중국에서의 공산당은 무소불위의 권위를 지닌다.

개혁개방이 이뤄진 이후에도 그 권위는 전혀 흔들림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기업에 대한 영향력행사 또한 예외가 아니다. 기업의 의사결정권한이
공장장(경영자)에게 귀속되던 시기는 건국초기 단기간에 불과했고
1957년 이후부터는 기업(공장)당위원회 서기에게 기업의 모든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79년이후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수있는 길은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보장할수 있어야하고 이를 위해 기업의 독립성 확보가 필수적이라는데까지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기업당위원회 서기가 기업에 대해 쥐고 있는 "통제의 끈"은 여전히
상존하며 국영기업의 "독립성"과는 양립할수없는 "방패와 창"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연한 기회에 기업당위원회 간부를 만날수 있었다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왕옥영.48세.북경연산석유화공공사 당위원회 부서기. 왕은 후덕한
가정주부의 풍모를 지녀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지만 언사와 태도는 매우
절도있는 여인이었다. 회사에 대한 개황도 조리있게 설명하였으며 뛰어난
국제감각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절도있는 태도는 주위의 사람들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취재진을
맞는 자리에는 연산석유화공 부설 경제관리연구소장인 도수금씨,주임공정사
인 백만래씨,고급공정사인 풍춘성씨,여성고급공정사인 고혜방씨등도 참석
했다.

이들중에는 외모로 보아 왕부서기보다 나이도 더많이 들어보이고 회사를
움직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같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든 대화가
왕여인의 입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진수성찬으로 잘 차려진 식탁에서도 그녀는 예의와 모범을 보이며 식탁을
주도했다. 아무도 그녀를 소홀히 대하는 것같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이 지닌 권위를 흠뻑 느끼게하는 대목이었다. 왕부서기가 그
정도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위에있는 기업당서기가 갖는
위치는 쉽게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이로써 과거 당이 기업을 지배해온
양상은 충분히 짐작이 되는 것이었으며 아직도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것을 실증적으로 느낄수 있는 자리였다.

기업내 중국공산당의 존재와 경영자와의 관계를 묘사할때는 "적과의
동침"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른다. 불행한 사실은 적과의 동침이
계속되는한 국영기업의 개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