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금융실명제가 전격실시된 후 1년동안 정치권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정치자금 모금과 관리의 투명성이 제고되고 선거
문화의 일대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거의 관행화되다시피 기업으로부터 정치권으로 유입되던 "검은 돈"이
사실상 차단됨으로써 우선 정치자금규모가 축소됐다. 이는 각 정당들로
하여금 정당운영경비를 줄이는 작업을 단행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민자당의 경우 중앙당사무처와 지방조직을 대폭축소했고 월경상경비는
거의 절반수준으로 줄였다. 야당의 경우 원래 "검은 돈"의 유입규모가
여당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작았지만 그나마도 끊겨 더욱 심한
어려움을 겪게 됐다.

실명제의 실시로 여야는 새로운 정치자금의 조달방법과 돈안드는 선거를
강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나온것이 정치자금법의 개정과 통합선거법의
제정이다.

국고보조금이 유권자 1인당 6백원에서 8백원으로 인상됐고 선거가 있는
해에는 매 선거당 2백원씩 추가지원토록 했다.

내년의 경우 여야정당에 무려 1천억원에 가까운 국고보조금이 지원되게
돼있어 일부의 비난을 받고 있고 법재개정여론이 일고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선거비용의 국고부담도 대폭 늘렸다. 정치자금이 투명화되기는 했으나
일부계층이 부담하던 정치자금을 국민이 분담하게 된 셈이다.

기부금도 의원 한사람당 1억원 한도에서 1억5천만원까지 걷을수 있게
됐다. 무기명 정액영수증제를 도입,실명제실시로 막힌 숨통을 다소
열어주기도 했다.

통합선거법의 제정으로 후보자의 재산공개조항이 신설되고 선거비용은
예금계좌로만 지출할 수 있게 돼 선거풍토가 바뀌게 됐고 지난 대구
수성갑등 3개지역 보궐선거에서는 돈안드는 선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할수있다.

의원 개개인들의 정치자금조달방법도 많이 달라졌다. 정치권은 전보다는
못하지만 새정부출범후에도 그나마 비밀리에 유지해온 파이프라인조차
실명제가 실시됨으로써 상당부분 끊어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문에 너나 할것없이 "후원회"구성에 열을 올렸고 올 6월말 현재
선관위에 등록된 현역의원들의 후원회수는 2백13개로 늘어났다.

실명제실시 이전에도 의원후원회는 1백53개나 있었고 학연이나 지연이
좋아 후원회를 통해 통상적인 정치비용을 충분히 마련하고 있는 의원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원들은 후원회를 통해 월경상경비의 절반정도밖에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의원들의 씀씀이가 종전보다 절반수준으로
줄어들게 됐다.

평소에 당원수련회 또는 단합대회등을 갖고 "사전선거운동"을 해왔거나
이를 실시할 계획으로 있던 의원들중 상당수는 실명제실시로 자금조달에
차질이 생기자 이같은 계획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포기하고 있다.

경조사에 화환보내기가 금지된 후에도 어쩔수 없이 봉투를 보냈으나 이제
봉투의 두께를 절반 정도로 줄이거나 아예 모르는 척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실명제 실시로 정치권이 완벽하게 투명한 돈으로만 운영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남에게 노출되기를 꺼리는
기업인이나 지지자 친구 동창 친인척등이 예전처럼 정치인들을 은밀히
지원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현상인것 같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보면 실명제실시로 거액의 정치자금(그것이 검은돈이든
아니든간에)이 쉽게 정치권으로 유입되기는 어려워졌고 의원들 스스로도
위험부담이 따르는 대담한 정치자금조달은 회피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박정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