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 서울대교수/경제학 >


냉장고를 생산하는 기업이 있는데 1993년에 생산한 것 중 팔리지 않고
남은 5,000대를 재고로 보유하고 있다 하자.

그 기업이 94년에는 8,000대를 생산하는 한편 7,000대를 대당 50만원의
가격으로 판매했다고 한다.

이 자료를 기초로 하여 그 기업의 94년 영업이윤을 구해 보기로 하자.

이 해의 총판매액은 35억원으로 계산되어 나오므로 생산비용만 알면 이윤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대당 생산비는 93년에 30만원이었던 것이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인해 94년에는 40만원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마다 생산단가가 달라지는 상황에서는 회계장부에서 재고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생산비용이 다르게 계산되어 나온다.

한 대의 냉장고를 놓고 그것이 재고로 있었던 것 중 하나라고 보면 그
생산원가는 30만원인 셈이 된다.

반면에 그 해에 새로 생산된 것 중 하나로 본다면 그것의 생산원가는
40만원이 된다.

그런데 창고에서 몇대씩의 냉장고를 꺼내 판매할 때, 작년의 재고를 먼저
꺼내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 생산된 것을 먼저 꺼내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결국 이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며, 따라서 다음의 두 가지 재고처리방식중
하나를 편한 대로 선택하여 사용하면 된다.

재고가 먼저 팔려나가고 이어서 그 해에 새로 생산한 상품이 판매되는
것으로 처리하는 방식이 있는데 이를 선입선출법(first-in first-out,FIFO)
이라고 한다.

이 방법에 의해 94년에 팔린 7,000대의 생산비를 구해 보면, 우선 재고로
있던 5,000대의 대당원가가 30만원이므로 이 부분의 생산비는 15억원이
된다.

여기에 94년에 생산되어 판매된 2,000대분의 생산비 8억원을 추가하면
총생산비는 23억원으로 계산되어 나온다.

따라서 장부상 이윤은 12억원이 된다.

후입선출법(last-in first-out,LIFO)에서는 그 해에 생산된 부분이 먼저
팔려 나가고 재고는 그 다음에 판매되는 것으로 처리한다.

즉 94년에 판매된 7,000대 모두가 40만원의 단가로 생산된 것으로 보아
총생산비를 28억원으로 계산하게 된다.

따라서 이 방식하에서의 장부상 이윤은 7억원이 된다.

인플레이션하에서는 선입선출법하에서의 이윤이 언제나 더 크게 나타난다.

인플레이션의 상황에서 법인세의 세금부담을 줄이려 한다면 후입선출법을
사용하는 것이 명백하게 더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의외로 많은
기업들이 선입선출법을 고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기로 선택한 셈인데 상식에
비추어 선뜻 납득하기 힘든 현상이다.

한 가지 그럴듯한 설명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상황이 이 현상과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경영진은 기업의 경영성과를 가능하면 좋게 보이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유인을 갖게 된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법인세의 부담이 무거워지는 것을 무릅쓰고
선입선출법을 채택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