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영 일 <한국농촌경제연 원장>

지난 93년의 극심한 흉작에 따라 최근 북한의 식량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이른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의 거리에 "하루 두끼만 먹자"는
구호가 적힌 입간판이 등장하고 비무장지대까지 대대적으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고있다.

어떤 언론보도에서 예기치않은 돌발사태를 낳을지도 모르는 한반도의
불안정요인으로 핵문제 다음으로 북한의 식량난을 꼽을만큼 식량문제의
악화가 북한의 체제유지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할수도 있다는 관측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의 평년작곡물생산량은 4백20만
t 수준으로서 소요량 6백40만t 규모에 비해 2백20만t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족분은 기준배급량 대비 20%가량의 감량배급을 통한 소비절약과 가용
외화를 곡물도입에 우선 배정함으로써 각각 1백만t 가량씩을 메워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의 경우 1백40만t의 외곡도입을 계획했으나
도입실적은 1백9만t에 그쳤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경우는 극심한 냉해와 벼물바구미를 비롯한 병충해 때문에
곡물생산이 2백60만t 수준으로 격감했다. 이에따라 곡물부족량이 예년의
2백20만t수준에서 3백80만t 규모로 크게 늘어남으로써 최악의 식량부족
사태가 초래된 것이다.

북한이 오늘날 겪고있는 심각한 식량난은 북한경제전반의 여건변화및
농업정책의 산물이다.

북한은 지난 1946년 3월5일 토지개혁을 통해 반봉건적 토지소유관계 및
농촌에서의 자본주의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김일성체제에 대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뒤이어 6.25전쟁을 거치면서 농촌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고 토지를 인민적
소유로 개편하기 위한 목적으로 농업협동화를 추진함으로써 58년에는
협동화의 완성단계에 이른다.

북한은 농업협동화를 통해 행정단위와 생산단위를 결합시켜 모든 생산과
분배및 소비가 단일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조직했다. 현재 북한의
총인구 2천2백65만명 가운데 40.5%에 해당하는 9백17만명이 농업인구인데
이들은 1개농장당 평균 3백호의 농가가 약 5백 의 경지를 경작하는 약
3천3백개소의 협동농장에 편성돼있다.

농업정책에 있어서는 불리한 자연조건을 극복하여 곡물생산을 늘리는
것이 주된 목표로 설정됐다. 이를위해 경지확장과 더불어 기계화 및
관개시설 확충을 중심으로 생산기반을 조기에 조성하며 전작의 간혼작
체계를 단작체계로 전환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

지난 70년대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다지 문제되지 않았던 식량부족
현상이 70년대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하고 80년대 중반이후에는 상황이 더
한층 악화되었는데, 이는 대외적 여건의 변화와 국내정책적요인이 복합적
으로 작용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다.

먼저 대외적 요인으로는 지난 78년이래 진행된 중국의 개혁과 개방및
80년대말이래의 구소련과 동구권의 붕괴에 따른 영향을 들수있다.

이러한 사태의 전개에 따라 종래의 동맹국으로부터 경제원조가 중단되는
한편 교역방식도 구상무역방식으로부터 경화결제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외환부족이 가중됐다.

이에 북한의 산업활동 전반, 특히 비료 농약 농기계등 농업자재산업이
크게 타격을 받게 됐고 이는 농업생산성의 대폭 하락을 초래하였다.

대내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집단농장체제의 비능률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들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농업생산은 78년이래 집단농장의 해체와 개별
경영으로의 이행에 따라 40%이상이나 증가했다.

구소련의 경우 전체 경지면적 가운데 불과 3%에 지나지 않는 농가부속
토지의 생산량이 곡물총생산의 30%를 차지했다. 북한의 경우에도 농가
텃밭의 생산성이 집단농장에 비해 2~3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에 비추어볼때 농민의 의욕상실로 인한 집단농장체제의
비효율성은 북한의 식량난을 가중시킨 최대의 제도적 질곡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밖에도 농기계의 노후화 비료.농약등 농자재의 절대적 부족 밀식재배에
대한 집착등 낙후된 재배기술, 빈약한 수송.가공.저장시설에 따른 유통
과정의 비능률도 농업발전을 제약하는 기술적인 요인으로 거론된다.

비료의 경우 과거 국내소요량의 80% 수준을 공급하던 질소및 인산질의
국내생산이 크게 위축되고 있으며 가리질 비료는 전량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김일성사망이후 김정일로의 권력승계가 거의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현시점
에서 북한의 농업정책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가를 전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새로 등장할 북한의 권력
승계자는 식량난과 경제침체로 인해 흐트러진 민심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중국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거나 과거 동맹국들에 대해
경화결제방식의 일시적 유보를 요구하는 등의 단기대책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의 경제적 불안을 완화시키는데 기여하기 위해
식량등 경제적지원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이 구소련과 동구제국이 걸어왔던 체제변화보다는
중국이 택하고 있는 제도변화의 길을 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는 현재의 집단농장소유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거나 토지를
국가 또는 협동소유로 하되 중국처럼 토지의 이용권을 농민에게
부분적으로 이양하는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으로 갑작스런 김일성사망으로 연기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이
새롭게 추진되고 남북간의 경제협력문제가 거론될 경우 농업부문에서
북한의 식량증산을 위한 기술협력이 주된 의제로 등장할 것이며
부분적으로는 약초나 경제작물등 일부 농산물의 계약재배와 같은 방식을
통한 교류가능성이 논의될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