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 평론가로 뛰어난 족적을 남긴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프랑스 파리의 페르 라세즈묘지에 잠들어 있다.

프랑스혁명의 영웅들을 비롯 철학자 콩트, 소설가 콜레트 발자크
프루스트, 극작가 몰리에르, 시인 아폴리네르, 화가 앵그르 코로
도미에,작곡가 쇼팽 비제,샹송가수 피아프등 유명 프랑스인들의 묘와
자리를 함께 하고있다.

그곳에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나 미국의 무용가 덩컨과 같은 외국인
명사들의 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와일드가 이역땅에 묻힌 연유는 특이하다.

와일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강조하는 탐미주의의 기수로서, 또
장편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비롯해 "윈더미어경 부인의 부채"
"보잘것 없는 여인" "진지함의 중요성"등 일련의 희곡과 "살로메"라는
시극을 발표한 작가로서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동성애사건은 그의 문학적 천재성을 영국인들로 하여금 외면
하게 만들었다. 퀸즈베리후작의 아들 알프레드 더글러스경과의 추문이다.

1895년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2년동안 징역을 살고 나온 뒤에도 사회
의 지탄이 여전하자 견디다 못한 그는 파리로 건너가 친지들의 도움으로
곤궁한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A 지드등 몇명만이 참석한 초라한
장례를 치렀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어쩌면 예견했었던 것도 같다. 주인공이 쾌락주의를
신봉한 나머지 타락과 악행끝에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그의 초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탈선의 업보는 사후에도 이어졌다. 미국의 조각가 제이콥 엡스타인
이 그의 묘석에 새긴 날개 달린 스핑크스의 한 부분이 그곳을 방문한 어느
영국부인들에게 남성의 상징으로 비쳐져 잘려나간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자유분방의 상징인 파리에서조차 그의 영혼은 규격화된 영국적 사고방식
으로부터 벗어날수 없었다.

1세기동안 영국인들로부터 배척받던 그의 영혼이 이제 고국의 품에 안주
하게 되었다. 그의 최고 인기희곡 "진지함의 중요성"초연 100주년인 내년
2월14일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내의 시인구역에 그의 묘비가 세워진다.

초서 스펜서 테니슨등 대문호들의 묘와 묘비의 대열속에서 명예가
되살려지게 된 것이다.

그의 복권이 "옥중기"(1905)라는 참회록의 메아리인지,윤리감정 변천의
소산인지 만감이 교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