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예비율이 지난 67년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27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
인 3.5%까지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은 당국이 어떤 변명을 늘어놓든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전력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전력비상에 유사한 우리사회 제반의 다양한 어려움에 대한 당국의 대응
능력, 국민의 신뢰, 그리고 총체적으로는 결국 국가의 위기관리능력자체를
의심케 만든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고 안하고는 지금 전적으로 하늘에 달려 있다.

운이 좋아 제한송전같은 불상사없이 올여름 전력비상을 그렁저렁 넘기게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주무당국이나 관계기관이 보여준 대책과 대응이란게 얼마나
안이했고 신뢰가 안가는 내용이었는가는 이 기회에 한번 짚고 넘어가야
마땅하다.

우선 이번 사태는 진작 예고된 일이었다.

한달전에 이미 전력예비율이 6%대까지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졌었고 그것은
올여름철 전력사정에 경고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며칠후 상공자원부는 한전과 입을 맞춰 "하절기 전력수급안정대책"이란걸
허겁지겁 내놓았다.

그런데 바로 그 대책이란게 별 쓸모도 믿을만한 것도 못되는 내용임이
드러난 것이다.

건설중인 발전소의 조기완공, 기존발전소의 보수기간단축등이 골자로된
이 대책은 장마가 7월말에 끝나고 그때부터 8월중순까지 에어컨가동이
절정에 이를 때를 전제로한 것이었다.

일찍 닥친 폭염에는 무책이었던 셈이다.

우리사회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기는 매한가지이다.

가령 이제와서 각급학교의 조기방학문제가 겨우 거론되는 모양이지만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벌써 실시했을 법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획일성과 경직성, 규제에 길들여진 우리사회의
한 일처리관행 때문이다.

남하는대로, 시키는대로만 하면 책임질 필요가 없어 좋지만 그런 풍토에서
는 창의와 혁신을 기대할수 없으며 같은 잘못을 몇번이고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

여름철만 되면 치르는 전력소동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전력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은 두말할것없이 여유있는 개발과 절약
두가지다.

그러나 여름철 전력난과 같은 것은 과학적 합리적인 관리로도 얼마쯤은
극복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러시아워의 교통혼잡을 교통시스템으로 얼마간 덜수 있는 이치와
같다.

정보통신혁명을 얘기하고 컴퓨터와 자동화가 산업현장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마당에 제한송전이니 정전과 같은 사태를 염려해야 한다면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어디 전력뿐인가. 기름과 가스도 마냥 안심하고 쓸 처지가 아니다.

에너지에 관한한 어떠한 위기에도 대응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