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사후 김정일이 완전히 권력을 승계하더라도 경제파탄으로 걷잡을
수없는 민중봉기를 초래, 북한체제가 전면붕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이 시나리오는 북한체제의 특성상 개방이 한계를 갖는다는 점, 경제파탄의
책임이 "아버지만 못한" 김정일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점등을 근거로 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의 예상은 북한의 특정지역에서 식량폭동이 일어나 이것이
대도시로 확산되면서 수천명단위의 사상자 발생으로 이어지고 군부쿠데타가
나면서 결국은 한국정부에 통치권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인계한다는 것으로
돼있다.

이같은 시나리오는 최근 강인덕극동문제연구소장 연하청보건사회연구원장
류재천서강대교수등 10명의 북한전문가들이 남북통일과정을 4가지 패턴으로
나누어 예상한 시나리오중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화적
흡수통일에 관한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이밖에도 북한의 <>전면도발에 의한 대남무력통일 <>한국의
대북승전에 따른 흡수통일 <>북한이 경제적 안정을 되찾은뒤 단계를 밟아
양측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합의방식의 평화통일등을 상정하고 있다.

4가지 시나리오를 요약한다.

[[[ 시나리오 (1) ]]]

(북한체제의 궤멸에 의한 흡수통일)=199X년 10월 김정일은 국가주석,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회 위원장등 3권을 장악한다.

김정일은 곧이어 모든 일에서 "통크게 벌이자"는 평소 주장대로 주민의
환심을 사기위한 부분개혁조치에 나서기 시작한다.

이해 말 보통강변 게시판에 <>주민의 국내여행 자유화 <>식량배급제 폐지
<>자유상점제도입 <>60세이상 해외여행 허용 <>군복무기간 5년단축 <>해외
간행물판매 허용 <>이산가족 교환방문허용등 과감한 개혁조치가 나붙는다.

예비식량없이 식량구매조치를 자유화한 바로 다음날부터 식량수요가 폭발,
모든 국영상점재고가 일시에 바닥나버린다.

김정일은 서둘러 전시비축양곡을 풀도록 하지만 장부상 재고는 이미
암거래로 다음날 다 빠져나가 버리고 만 다음이다.

식량구매를 둘러싸고 지방관리 국영상점 주민들간에 조직적인 부조리가
만연하기 시작한다.

진눈깨비가 휘몰아치는 이듬해초 일요일아침 함흥 제1국영상점 앞에는
식량을 구입하려는 주민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오전 10시에 문을 연 상점은 앞줄에 선 대여섯명에게 식량을 팔고나서
"재고가 다 떨어졌다"며 문을 닫는다.

화가 난 주민과 종업원들간에 밀고당기는 싸움이 벌어진다.

이 때 누군가 "상점창고에 관리들에게 빼돌려진 쌀가마니가 가득하다.
창고로 가자"고 외친다.

흥분한 주민들이 창고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백미 10여가마니가 발견된다.

주민들은 쌀을 끄집어내고 창고에 불을 지른다.

이러는 사이 사회안전원들이 출동,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며 소요
진압을 시도한다.

부녀자들이 살상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군중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급기야는 "김정일은 물러나라"는 반체제구호까지 등장한다.

시위군중은 사회안전요원들을 밀어붙이며 정오께 공공기관등에 투석과
방화를 시작한다.

오후2시 함흥에 위치한 제10기계화군단 예하 전차부대가 시내에 진주,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기관총사격을 시작한다.

삽시간에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함흥식량폭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북한전역에 확산된다.

다음날 오후3시.

김일성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최초의 시가행진이 벌어진다.

시위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10만명선으로 불어난다.

이날 밤 평양방어사령부 예하 군부대가 주요 시설물에 배치되고 진압부대
가 시외곽에 집결하는게 목격됐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즉각 투입되지는
않는다.

시위는 산발적으로 계속되고 이튿날을 맞는다.

아침 7시 평양방송은 시위주동자 17명이 체포돼 조사받고 있는 중이라는
뉴스를 내보낸다.

아침 8시께 일터로 향하던 트럭과 버스들이 시내 주석궁앞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오전10시께 시위군중은 30만명으로 불어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근무지를
이탈한 노동자들이 합세, 규모는 50만명으로까지 늘어난다.

시위군중은 김정일의 즉각하야를 주장하고 온종일 대정부 성토를 벌인다.

저녁7시 평양방송엔 "잠시후 중대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아나운서의
긴장된 음성이 흘러나온다.

이윽고 7시10분.

000정무원총리가 "김정일 유고"를 발표한다.

밤이 깊어지고 광장에는 여전히 10만명선의 시위군중이 남야 모닥불을
피우고 초조히 후속발표를 기다린다.

다음날 아침8시.

000총리는 군장성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전날밤 김정일이 주석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사임했고 후임에는 오00이 선출됐다"고 발표한다.

아침 10시.

오00주석은 전매체를 통해 긴급담화를 발표, "남조선과 무조건적인 즉각적
인 통일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히고 한국정부에 대해 긴급원조식량 50만t을
비롯, 각종 물자의 지원을 요청한다.

1개월후 한국정부로부터 특별조사단이 파견되고 또다시 2개월후 오00주석이
서울을 방문, 김00대통령과 남북한정상회담을 갖는다.

이날 합의된 한민족 대통합방안이 공동성명으로 발표된다.

(1)대한민국은 북한지역을 대한민국 특별행정관리구로 선포한다.

(2)북한지역에 유지돼오던 군사력.지휘계통은 이날자로 대한민국정부가
접수한다.

(3)대한민국은 10년간 전면통합 과도기를 둔다.

(4)북한의 모든 외교.국제관계는 대한민국정부가 일괄승계한다.

[[[ 시나리오 (2) ]]]

(남북공존을 통한 통일)= 향후 약 30년간 남북한체제가 공존한뒤 2020년께
평화적으로 통일된다.

북한은 대남혁명노선을 보류하고 경제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며 남한 역시
통일후유증을 우려, 흡수통일을 주저한다.

21세기들어 남북간 교류가 확대되고 통일의식이 확산된다.

2010년께부터 본격적인 정치통합준비가 시작되고 남북연합형태의 실험정부
가 가동된다.

[[[ 시나리오 (3) ]]]

(전쟁에 의한 한국의 대북흡수통일)=경제난이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폐쇄정책을 고집,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된 북한정권이
돌파구로 한국에 대한 침공을 벌인다.

그러나 한국은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북한의 침략을 분쇄, 개전 1주일만에
신의주까지 밀고 올라가 북한전역을 수중에 넣는다.

한국정부는 북한체제를 무효화하고 즉시 북한경제에 대한 대수술에 나선다.

그러나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북한경제 수습과정에서 한국경제는 독일이
치룬 통독후유증의 몇배에 해당하는 곤경을 겪는다.

[[[ 시나리오 (4) ]]]

(북한의 적화통일)=북한은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한뒤 비밀핵개발을 계속
하면서 대남평화공세를 강화한다.

대한민국 사회분위기가 이완되고 무분별한 통일론이 정치조직화되면서
국론이 분열된다.

00년0월0일 토요일.

북한은 기습적으로 전면전을 개시, 만24시간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남침
5일만에 부산을 수중에 넣는다는 것인데 가능성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