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가 행정간소화를 역점사업의 하나로 추진해오면서 그 개선효과가
직접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년 4월 대통령 직속기구로 발족된 행정쇄신위원회는 지난 6월말까지
총1만1,740건의 시정건의를 받아 그중 8,404건을 개선과제로 선정했고
실제로 제도를 고친 경우가 1,684건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적인 개선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행정개선노력이
내용면에서는 얼마나 저차원에 머물러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지난1일부터 실시된 주민등록 등.초본 온라인발급제도라고 할수 있다.
국민편의를 위한 이같은 실질적인 조치를 우리가 행정쇄신의 한 맹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이 제도가 본질적인 문제를 덮어두고 지엽적인 것만을
건드리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가 연구해야할 것은 어떻게 하면
등.초본을 편리하게 발급받을수 있도록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하면
등.초본제출 요구를 줄이느냐는 것이 돼야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지난 4월8일부터 시행된 민원사무기본법은 주민등록증등의 증명서나
행정전산망자료로 확인이 가능한 경우에는 민원인에게 관련 증명서류의
제출을 요구할수 없도록 못박고 있다. 주민등록법에도 같은 취지의
조문(17조9항)이 명기돼 있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기관 단체
일반기업등에서 민원인에게 신분확인용으로 주민등록 등.초본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사실은 연간 등.초본발급건수가 1억통(93년)에
달하고 있다는 통계에서도 입증된다. 가구당 한해에 10통의 등.초본을
필요로 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등록은 과거 냉전시대에 "불순분자"를 가려내기 위한
국민감시수단으로도 이용됐었다. 그러나 이제는 민원인의 신원을
손금들여다보듯 할수 있는 세상이다. 프라이버시의 과다노출이 문제가
되고있는 이 정보화시대에 사사건건 주민등록 등.초본을 요구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관행이 아닐수 없다.
요즘 기업경영에서도 보고.지시.결재등의 통제가 없는 "해방경영"이
강조되고 있다. 규제완화와 행정쇄신의 목적도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조직은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을 도와주는
공간이라는 발상이 필요하다. 사람을 해방시키지 않고서는 국제화시대가
요구하는 경쟁력도 자율의식의 배양도 불가능하다.
소가 병들었다면 그 병을 고쳐야지 외양간 말뚝을 고친다고 소의 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행정개혁의 방향을 바로 잡기위한 발상전환이 긴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