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병속의 지미카터. 다급해진 김일성은 그를 불러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올리브 가지"를 손에 쥐어 주었다.

사람들은 올리브 가지속에 음흉한 가시가 돋쳐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그것이 진정한 평화의 메시지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동조 전외무장관. 한일수교, 그리고 주미대사시절 코리아 게이트 사건에
휘말린 것은 물론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으로 박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한
그의 직업외교관으로서의 이미지는 일반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요즈음 우리나라 외교가 여러가지 외부적 도전으로 시험대위에 올라 있는
상황인만큼 그가 던지는 한마디는 무게를 지닐수 밖에 없다.

-북핵등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습니다. 요즈음 우리 정부의 외교를 평가
하신다면..

<>김전장관=요즈음 우리정부의 국제문제 접근방식을 보고 있으면 외교가
아니라 내교를 하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북핵.통일문제등은 분명 국제문제이고 따라서 외교라는 틀속에서 이루어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국내문제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에는 상대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라는 주체를 무시한채 마구잡이식으로
끌고 가려고 하면 무리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무슨 문제든지 주변여건이라는 것이 있고 대세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북핵, 더 나아가 통일문제등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의 이해가 첨예
하게 얽혀 있는 문제이고 따라서 이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야만 그 해법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정부의 접근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문제들이 마치
우리 혼자서도 해결할수 있는 내교문제인양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요즈음 돌아가는 형국에 비추어 북한이 추구하는 바는 뭐라고 보십니까.

<>김전장관=과거 우리 정부는 "4자 교차승인"을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러시아 그리고 중국과 수교하는 대신 북한은 미국 그리고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 한다는 것이었지요.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급전되어 우리는 과거 양공산대국과 수교를 하게
됐지만 북한에는 아무 소득이 없었습니다.

교차라는 말 자체가 필요없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일성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미.일과의 수교입니다. 그게 쉽지 않으니까 핵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이른바 김일성의 UDIDAD(You die, I die, All die=너 죽고, 나 죽고,
모두 죽자)전략이 먹혀들어, 남쪽에서는 라면과 부탄가스가 동이 나기까지
했는데.

<>김전장관=김일성은 공갈과 협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전쟁 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의 전술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국민들에게 "전쟁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난다고
하더라도 물리칠 자신이 있다"는 식으로 확고한 신뢰감을 심어줘야 합니다.

-카터 전미대통령의 방북으로 국면이 전환되는 것 같은데..

<>김전장관=카터가 김일성과 대화를 한다는 것도 어색한 일입니다. 카터는
그가 워싱턴의 수장일때 막후회담에서 박대통령과 눈을 부라리며 우리나라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던 사람입니다.

북한이야 말로 인권이 무시되고 있는 사회인데 카터가 김일성에게 인권
문제를 거론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시 됩니다.

미국이 카터를 통해 과거 닉슨이 주은래와 수교회담을 진행시킨 쇼크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외교가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데..

<>김전장관=김영삼대통령의 방중기간중 황병태 주중대사는 대북정책에
관한한 한미공조도 중요하지만 한중 축도 중요하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한중간에 결정된 바를 통보만 해주면 된다고도
했습니다. 그런 발언은 본국 정부차원에서, 그것도 우리들끼리 모인 자리
에서나 내밀히 다룰 성질의 것입니다.

-홍순영차관의 발언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김전장관=그렇습니다. 홍차관은 남북간의 "특사교환문제는 북미 3단계
회담의 전제조건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를 받아 당시 도쿄에 가 있던 한승주외무장관은 그런 결정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해 버린 것입니다.

외교팀의 손발이 안맞는 전형적 사례였습니다. 결국 홍순영씨가 차관자리
에서 물러나게 됐지요.

-국민들은 김대통령이 러시아 방문중 차관상환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어 궁금해하고 있는데.

<>김전장관=벌목공문제등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고 또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할 문제이긴 하지만, 지금은 경제전쟁시대인
점에 비추어 차관상환문제와 같이 중요한 사안이 소홀히 다루어졌다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정부에서는 지난해 열린 APEC정상회담을 통해 우리가 환태평양시대의
주도적 위상을 확보한 계기가 되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노련한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미국의 대외정책에 이용된 "트로이 목마"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있지 않습니까.

<>김전장관=그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입니다. 국제정치에서는 국가이익이
우선합니다.

클린턴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언급한다고 해서 그가 우리의 입장에 서서
연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의 연설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 유권자들의 여론동향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미대사시절 코리아 게이트 스캔들에 휘말리신 기억이 새로우실텐데요..

<>김전장관=미국사람들은 박동선씨가 미의회의원들을 매수했다는 의혹을
가지고 수사를 하게 되었으나 박씨에게서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난처해진 미국은 로비활동이 대사의 개입없이 가능했겠느냐는 심증을
가지고 나에게 접근해 왔습니다.

-어떤 협조를 해달라던가요.

<>김전장관=우리 정부가 금품을 건네준 의원의 명단을 대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외교관은 재직중 행한 업무에 대한 민.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빈
협정에 의거해 볼때 미국의 요구는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그러한 국제관례를 그대로 인정하던가요.

<>김전장관=팁 오닐 하원의장은 물론 먼데일씨등이 질의서를 보내오는등
수사에 협조해 달라는 압력이 대단했지요.

당시 주일특파원으로 있던 뉴스위크지의 버나드 크리셔라는 기자는 금품을
수수한 의원의 이름을 단 한사람만 자기에게 밝혀 줄 경우 미국정부가 이를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약속을 자기에게 했노라는 타협안을
내놓기까지 했습니다.

-미의원들에게 실제로 금품을 건넨 사실이 있습니까.

<>김전장관=없습니다. 그렇게 할수도 없었지요. 함께 어울리게 되는
의원들에게 골프 그린피 정도를 낸다거나 밥값을 내는 가벼운 우정의
표시를 해본 적은 있으나, 금품을 따로 만들어 건네준 적은 없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사관은 사실상 "거지"나 다름없었습니다.

다른 나라 대사관들은 국경일을 맞아 대규모로 손님을 초대하는 연회를
자체 관저에서 여는 경우가 많았지만 우리는 1백명도 수용할수 없는 비좁은
공간을 쓰고 있었습니다.

차선책으로 워싱턴에 있는 쉐라톤호텔에서 파티를 한번 열기로 했습니다.
3백명의 손님을 초대할 경우 1인당 5달러짜리 음식을 제공하려 했더니
식비만 1천5백달러가 되었습니다.

본국에 이에대한 협조를 요청했지요. 하지만 본국에서의 대답은 "예산안
에서 쓰시오"였습니다. 물론 파티는 열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이같이 궁핍한 상황에서 미의원들에게 돈을 건넨다는 것은 말자체가
안됩니다.

-그 사건은 우리가 미국정치의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는 시각도 있는데..

<>김전장관=그렇습니다. 공화당의 닉슨은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물러나게
됐고 코리아 게이트사건은 공화당이 민주당을 상대로 정치보복을 벌이는
과정에서 빚어진 오해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축구에도 관심이 많으시리라 여겨지는데..

<>김전장관=한국 사람이면 월드컵에 관심과 성원을 보내지 않는 사람이
없겠지만 이번에 FIFA부회장에 당선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내 사위가
되다보니 미국 월드컵은 물론이고 2002년 유치문제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공교롭게도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은 스페인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대담이 끝나고 난후에야 우리팀이 극적으로 비긴 것을 알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 어떤 도움을 주고 계십니까.

<>김전장관=유치위원들중에 외무부 출신이 많아 이들과 어울리며 내사위
좀 잘 도와달라고 하는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입니다.

잘 되리라 믿습니다.

(김장관은 보스턴경기를 직접 관람하기 위해 21일 보스턴으로 출발했다)

< 대담 = 양봉진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