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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칼] (505) 제2부 정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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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줄을 지어 행진할 때면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동양에서 온
    진기한 모습의 손님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며 환영을 아끼지 않았다.

    사절단 일행은 먼저 화이트하우스로 미국 15대 부케넌 대통령을 예방했고
    며칠뒤 국무성에서 정식으로 비준서를 교환하여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발효시켰다. 그리고 이튿날은 국회의사당을 견학했다.

    워싱턴을 구경한 다음 그들은 뉴욕으로 갔는데 그곳 브로드웨이 거리에서는
    일본의 사절단을 환영하는 대대적인 행사가 펼쳐졌다.

    마천루가 하늘을 찌를듯 솟아있는 거리를 환영인파에 묻혀 행진하는 77명의
    사무라이들은 마치 꿈나라에 온것 같은 기분이었다.

    환영 군중속에 섞여 서서 일본사절단의 퍼레이드를 구경한 미국의 저명한
    시인 휘트먼은 그때의 광경을 읊어서 그의 대표시집 "풀잎"속에 담기도
    하였다.

    서쪽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일본에서 온
    겸양하면서 왜소하고 가무잡잡하고, 허리에 두개의 칼을 찬 사람들이
    모자도 안쓴 맨머리로 점잖게 무개 사륜마차에 기대앉아
    오늘 이 맨해턴의 대로를 지나가는구나
    (중략)

    드디어 오늘 우리와 대조되는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동양에서 온 대규모의 일본 사절단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던 것이다.

    그들 일행이 뉴욕을 떠나 귀국길에 오르려할때 메트로폴리탄 호텔에서
    환송연이 베풀어졌는데 대무도회까지 곁들여진 그 파티에서 무려 만병이나
    되는 샴페인이 거품을 내뿜었다.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구경을 잘한 그들은 미국 군함 나이애가라호에 몸을
    싣고 대서양을 횡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서 귀국하였다.

    9개월에 걸친 세계일주의 대여행이었다.

    그로부터 7년뒤인 1867년에 도쿠가와 막부는 다시 제법 큰 규모의 사절단을
    해외에 파견했다. 막부가 문을 닫기 한해 전이었다.

    이번에는 프랑스였다.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리니 일본도 참가해 달라는
    나폴레옹3세의 초청을 받았던 것이다.

    29명으로 이루어진 사절단은 갑옷과 도검따위 일본재래의 무기와 도자기
    칠기등 공예품, 그리고 서화를 가지고 파리로 가서 그 만국박람회에 전시
    하였다.

    초라하기 짝이 없었으나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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