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번치현이 단행되자, 옛 번주였던 지사들의 충격은 컸다. 이제 완전히
영지를 잃어버리고, 거처까지 도쿄로 옮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한마디로 망한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감히 어느 누구도 그 조치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이미 판적을 봉환한 터여서 언젠가는 그런 조치가 내려지지 않을까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천황의 이름으로 단행된 대어변혁이니 더욱 도전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유신정부는 옛 번주들의 처지를 감안하여 비록 지사의 직위를 박탈하기는
했으나, 봉록은 종전 그대로 지급하기로 하였다.

그러니까 영지를 잃고 거처를 도쿄로 옮겨도 봉록만은 종전대로 받을수
있으니, 당장 실생활에는 영향이 없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만을 속으로
삭이고, 수긋하게 좇기로 했던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 그런 쪽으로 도도히 흘러가고 있으니 도리가 없었다고나
할까.

옛 번주들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분노한 것은 사쓰마번의 시마즈 히사미쓰
였다.

그는 봉건제도의 폐지 자체를 반대해온 사람이었다. 천황의 통치 아래서도
번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수구파였다. 그런데 공론에 부치는 일도
없이 극비리에 추진하여 전격적으로 폐번치현이 단행되었으니, 마치 뒤통수
를 얻어맞은 것 같아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그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바로 자기의 부하였던 사이고와 오쿠보가
주동이 되어 그런 조치를 단행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싫어하는 사이고
녀석에게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아 견딜수가 없었다.

"그녀석을 그때 시마나가시에서 풀어주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살려
주었더니 결국은 나를 배신했지 뭐야. 돼지 같은 놈. 그리고 오쿠보 녀석도
제가 누구 덕에 인물이 됐는데, 은혜도 모르고 기어이 폐번을 하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구. 자, 어서 또 부어. 마시고 취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니까"

몇몇 가신들과 밤이 이슥토록 술을 마시며 히사미쓰는 울분을 토해댔다.

눈앞이 일렁일렁해지도록 취하자 히사미쓰는 혀꼬부라진 소리로 난데없이,

"불꽃을 쏘아올리라구. 불꽃을..."

하고 뇌까렸다.

"불꽃을 쏘아올리다니요?"

"불꽃도 몰라? 불꽃놀이를 하잔 말이야. 불꽃이라도 쏘아올려야 좀 속이
시원하겠어. 어서 불꽃을 쏘아올려!"

"예,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밤하늘에 슛!슛! 불꽃이 솟아올라 펑! 펑! 터져 곱게 흩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