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공자원부가 산업기술정책의 무게중심을 인력 정보 연구시설등 간접부문에
집중지원하는 "기술인프라 구축"쪽으로 돌렸다.

60년대 섬유, 70년대 조선, 80년대 전자등 특정산업과 관련된 기술육성에
힘을 몰아줘온 종래의 정책체계와 비교하면 일대 방향선회다. 산업체계의
환골탈태까지를 겨냥하고 있다는게 상공자원부측 설명이기도 하다.

우선 UR(우루과이라운드)협정타결로 특정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의 직접
자금지원이 어렵게 됐다는 외부요인을 들고 있다. UR가 허용하는 기초기술에
대한 보조금허용규정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정책틀을미리 바꾸겠다는 계산도
깔고 있다.

미국등 선진국들이 후발국의 "최종제품기술 무임승차"에 제동을 거는걸
주내용으로 하는 기술라운드(TR)를 거론하고 있는데 대비하겠다는 측면도
있다.

UR TR등에 한꺼번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술완제품 개발"이 아닌 "기술
인프라"를 지원하는 쪽으로 빨리 물꼬를 트는 것외엔 다른 선택이 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런 외부환경요인 못지않게 국내환경변화도 정책방향전환을 재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외국기술을 가져다 제품을 조립하는 "하향(Top-down)"
방식의 취약한 산업구조를 뜯어 고치기 위해 기술인프라구축을 서두르지
않을 수없다는 시각이다.

인력 정보 연구설비등 산업의 기술기반부터 기초를 다지는 "상향
(bottom-up)"방식으로 산업체계를 재편하기 위해 기술의 하부구조, 곧 기술
인프라를 튼튼하게 다져야겠다는 것이다.

또 비용효율로 따지더라도 한정된 자금을 특정분야의 최종기술에 쏟아붓는
것보다는 확산효과가 월등한 인프라구축에 중점 투입하는게 "생산성"면에서
더 낫다는 측면도 가세하고 있다.

이처럼 발본적인 기술정책혁신을 추진하는만큼 참여주체는 국내의 거의
모든 연구기관 대학 기업등을 총망라하게 될 것이라는게 상공자원부측
설명이다.

산업흐름은 다품종소량생산쪽으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의 기술지원체계는
여전히 "소품종다량"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심화돼온 산업의 현장수요와 기술간 수급괴리현상을 수술
하는 일이 시급해졌다는 인식이다.

섬유산업의 염색가공기술, 반도체 비메모리분야등이 대표적 예다. 기업들은
"당장 장사가 되는" 화섬이나 메모리분야에 돈을 쏟아붓기 바빠 미래성장
분야인 이들 부문에 대한 기술력개발이 외면되는 "시장의 실패"가 초래되고
있다는 것.

이들 부문에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네트웍을 형성토록
하고 정부가 필요한 기술개발자금을 지원하는 체제를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이같은 전제아래 정부가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 기술인프라구축 과제들을
프로젝트 베이스로 선별, 지원함으로써 대학및 연구기관간 경쟁체제를
촉진하겠다는 계산도 깔고 있다.

실제로 각국이 이런 방향으로 기술정책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생산기술
분야에서 일본 독일등에 비해 뒤쳐진 미국의 경우 이를 극복키위해 "21세기
를 대비하는 기술인프라조성"을 생존의 차원으로 추진하고 있다는게 상공
자원부 설명이다.

일본이나 유럽국가들도 기초및 중간기반기술 개발쪽에 부쩍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상공자원부의 "산업기술기반조성계획"은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당위성과
시급성을 갖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계획추진과정에서 과학기술처 체신부등 관련부처와의 예상되는
"영역다툼"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가 관심이다.

첨단 기술정책을 성공적으로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케케묵은 부처간
밥그릇싸움의 잘못된 관행을 뜯어고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란 얘기다.

<이학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