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 맨하탄섬의 한쪽 귀퉁이 우중충한 마천루들과 지저분한 거리만
보이는 월스트리트는 얼핏보면 무심한 구경꾼들이 실망하게된다.

그러나 건물내로 한발자욱만 들여놓으면 누구나 긴장하게 된다.

높다란 천정에 장중한 치장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품위를 지키려는 남녀들.
중압감에 오금을 펴기도 거북하지만 여유를 찾고 보면 풍요로움이 대변에
느껴진다. 뉴욕천지에 깔려있는 듯한 흑인을 찾아볼 수가 없는 곳이다.

세계금융의 총본산같은 월스트리트는 아직 백인들만의 성이며 그들의
언어와 문화가 독특한 그들만의 별천지이다.

철옹성같은 그곳에 훌륭히 입성, 안주하는듯하던 한 흑인의 갑작스런
죽음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고 그 의미 또한 간단하지
않다.

워델 라저드. 당년 44세. 자기 이름을 딴 30억달러규모의 금융자산 관리
회사 사장.

창업 9년만에 월스트리트 최대의 흑인소유 금융회사를 만들어낸 입지전적인
이 사람은 그러나 비밀도 무척 많은 인물이었다.

수많은 관청과 개인에게 자산관리를 자문해주고 거래를 성사시켜주던
슈퍼맨은 사실은 마약중독자였다.

인간적인 약점을 인정할 수 없고 오직초인적인 능력만을 과시하는
월스트리트에서 평범한 인간은 마약의 힘을 빌어서야만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최소한 3년전부터 마약을 사용해왔고 경찰에 체포된후 11개월동안
재활교육을 받은 기록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는 중독된 부하간부를 치료시켜 복직시키는 열의까지 갖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어쩌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는 빈털털이었다.

한해 몇백만달러씩의 수입이 분명한 그의 저택은 두번 세번씩 저당 잡혀
있었다.

세금체납에다 그리고 그는 홀몸이었다.

처자식은 모두 따로 사는데 새집을 또 사놓고 최고급품으로 꾸미던
중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아스러운 것은 사장의 이런 처참하기까지한 처지를
회사안의 누구도 몰랐다는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아니면 쉬쉬한 것일까.

어떤 경우건 금융자문회사의 특수성때문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은 월스트리트사람들이 입을 꽉 다물고 있어서 그렇지 금융계의
신뢰도문제가 우려되고 있다. 바로 몇주일전엔 대통령 주지사감들에게
자문을 해주던 그래서 스스로의 정치입지까지 넓힐수 있었던 월스트리트의
또다른 스타가 어쩔수 없이 중독증을 고백하고 수용소로 간일이 있었다.

그렇게까지 월스트리트를 매도할 것까지야 없다하더라도 흑인 중심의
소수민족계의 위치가 이 일로 영향을 받으리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믿고 맡기기엔 불안하다는 의구심까지야 아니더라도 소수민족계
회사에 대한 조심성이 생겨난다는 것조차 달갑잖은 일임에 틀림없다.

아시아 시장의 대두를 이용하기 위해 조금씩이나마 끼워주던 아시아계
젊은이들의 진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라저드의 회사는 사실 그간 검찰의 수사를 받아왔다.

사장의 개인적인 관련에 대해 수사당국은 분명히 부인하고 있지만 사장
으로서의 개입이 불가피했을 의문스러운 거래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할
참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의 죽음으로 가장 타격받고 가장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뭐니 뭐니해도
역시 흑인사회.

그들은 영웅을 잃은 슬픔에 잠겨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표상을 그들은
잃은 것이다.

흑인은 별수 없다는 소리가 혹 나올까 그들은 긴장한다.

소수 민족의 채용과 승진 사업후원자를 잃고 허탈에 빠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