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북으로 자동차로 1시간쯤 떨어진 곳에 메다라는 지역이 있다.
이곳은 세계가구시장을 주름잡는 이탈리아가구산업의 심장부이다. 수천개
의 가구업체들이 밀집해 각종 가구류를 만든다.

장롱에서 침대 화장대 소파 식탁에서 소품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전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 제품은 뉴욕과 도쿄 파리 번화가의 유명백화점
이나 가구전문매장의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제품답게 고가로 팔린다.

카시나 두비니 바르니니등 유명업체들도 대부분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지역에 입주한 업체들의 공통점은 모두 중소기업이라는 것.

연간 1천만달러이상을 수출하는 두비니사는 종업원이 30여명에 불과한
전형적인 중소기업이다.

공장이래야 기껏 6백평 남짓이다.

한국의 대형가구업체들이 1천~2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수만평의 부지
에서 가구를 생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도 이 업체는 한국의 대형가구업체에 못지않은 많은 가구를 해외로
실어내고 있다.

제품도 소파와 식탁의자가 고작이다.

이 회사가 수출을 많이 할 수 있는 이유는 철저한 하청생산에 있다.

분업화된 하청업체들이 다리 윗판 직물커버등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납품
한다.

도장도 전문업체가 맡아서 해준다.

두비니사가 하는 일이란 제품생산을 기획하고 조립 판매하는 일이다.

디자인도 외주를 준다.

인근 밀라노엔 가구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프리랜서형태의 디자이너가
수천명이 있다.

이들에게 신제품의 개념과 시장타깃을 설명하고 디자인을 맡긴뒤 이를
토대로 하청생산해 수출하는 방식이다.

수출도 현지법인이나 직영매장등을 통해 하는게 아니라 대리점이나
독점판매점을 통해 하고 있어 품이 덜든다.

같은 지역에 있는 바르니니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종업원 40여명의 바르니니는 침대 장식장을 주로 만든다.

이 회사도 목재가공에서 도장등 대부분의 공정을 하청을 통해 해결하며
고유브랜드를 통한 수출에만 전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침대를 만들때도 머리판 발판 매트리스등을 각각 하청생산한다.

두비니와 바르니니사는 이탈리아 가구업체의 전형이다.

이탈리아에는 목공소수준의 하청업체와 부품업체를 포함해 약3만개의
가구업체가 있지만 1백명이 넘는 종업원을 두고 있는 업체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대부분이 50명미만이다.

이같은 개미군단이 모여 세계 가구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지난해 가구수출은 80억달러로 2,3위권을 형성하는 프랑스나
독일 스페인보다 3배가량 많다.

2천여 한국업체들이 지난해 수출한 액수 1억3천5백만달러에 비해선 60배에
이르는 것이다.

비앤드비(B&B)나 카시나등 종업원이 수백명인 업체들은 자체 공장에서
다양한 제품을 직접 만들지만 이같은 사례는 극소수이고 대다수업체는
중소기업형으로 한두가지 전문품목을, 그것도 철저한 하청생산으로 만들고
있다.

"이같은 생산방식은 여러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시장환경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고 기업의 위험부담을 덜어줍니다. 특히 생산에
대한 부담이 적다보니 가구의 생명인 신제품의 컨셉트개발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일수 있지요"

이탈리아에서 40년동안 가구제조에 종사해온 구에르니 안젤로씨(리오로사
공장장)의 설명이다.

이탈리아가구의 또하나의 강점은 디자인의 다양성이다.

이들 업체는 절대 다른 업체가 만드는 제품은 생산하지 않는다.

뭐가 달라도 다르게 디자인된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이는 이탈리아사람의 기질이기도 하고 기업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이탈리아가구업체중엔 대를 이어 가구업에 종사하는 기업인들이 많다.

2,3대는 보통이고 심지어 6대이상을 가구생산에만 매달려 온 기업도 있을
정도이다.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가업을 이어받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에게 학벌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얼마나 좋은 가구를 만드느냐가
중요하지, 학벌이 뭐가 중요하냐는 태도이다.

이들에겐 가구가 사업인 동시에 가업이고 생활 그자체이다.

또 가구를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예술제품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독창성이 없는 예술품은 생명이 없듯이 이들은 독창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따라서 밀라노가구전시회와 같은 세계최대 전시회에 출품된 수많은 가구
제품도 유사한 것은 찾아 보기 힘들다.

옛날 왕궁에서 찾아볼수 있는 클래식 스타일에서 세미클래식 모던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구색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소재도 원목 파티클보드
합판 플라스틱 가죽 섬유 유리 대리석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이탈리아 가구전시회나 업체를 둘러보는 사람들은 이탈리아가구의 특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다양성이라고 말한다.

단지 소비자의 기호변화에 따라 원목가구냐, 하이그로시계통의 원색도장
가구냐등의 유행의 변화가 있을 뿐이지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가구는 다양성
을 생명으로 한다는게 가구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요즘은 지난 수년동안 유행했던 원색가구가 점차 퇴조하고 천연 나무색을
강조한 무늬목이나 원목제품이 두드러지고 있으나 단지 비중이 커졌다는
의미일뿐 여전히 원색제품계열도 출하되고 있다.

지난 4월중순 21개국에서 1천9백여업체가 참여한 가운데 열린 밀라노가구
박람회의 조직위원회 대변인을 맡은 파올로 마스트로모씨는 "모던스타일의
제품이 늘고 있으나 역시 전시제품의 특징은 다양성에 있다"며 요즘들어
예술성과 실용성 기능성을 가미한 제품이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와 한국업체간의 협력은 그동안 매우 미미한 편이다.

디자인에 대한 로열티를 내기를 꺼리는 한국기업의 특성으로 정식 기술
제휴나 디자인도입등은 드물다.

단순한 제품수입 판매나 우수한 목공기계의 수입등이 협력의 중심이었다.

대신 디자인은 밀라노전시회등을 참관한뒤 힌트를 얻어 개발에 참조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디자인을 참조하는데도 한계가 있어 요즘들어 디자인개발이나
신제품생산에 협력하는 모습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업체는 에이스침대. 이탈리아의 고급기술자 6명을 초빙해 충북
음성소재 계열사인 리오로사 제품생산에 활용하고 있다.

이들을 목공 도장등 분야별 공정책임자로 임명해 신제품개발에 나서는
한편 자사직원들에게 이탈리아 기술을 전수시키고 있다.

리오로사는 클래식가구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접목시킨 고급가구를 올
상반기중 선보일 계획이다.

풍원OA산업은 이탈리아 헤론파리지사로부터 디자인기술을 도입해 조립식
철제가구를 생산하고 있다.

이 가구는 손수 설치하는 DIY제품이다.

이밖에 "러브니에" 브랜드로 가정용가구를 생산하는 유남산업은 금년초
이탈리아 자르디나사로부터 로보트스프레이방식의 하이그로시도장설비를
도입하는 한편 감마레뇨사로부터 도료배합방법및 도장기법에 관한 기술을
들여와 고급 하이그로시도장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밖에 몇몇 업체가 이탈리아와의 기술제휴나 디자인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는 그동안 이탈리아와의 협력이 미미한 수준에 그쳤으나 갈수록
디자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양국업체간의 협력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밀라노=김낙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