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국제통화기금(IMF)이 러시아에 대해 15억달러의 차관을 제공
키로 한 것을 두고 "서방선진국들의 도박"이라고 부른다.

보리스 옐친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장경제로의 체제개혁을 외친지 2년반이
지나도록 러시아경제의 상황이 거의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지부진한 경제개혁걸음때문에 정치적인 불안까지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IMF가 15억달러를 공급키로하고 이어 대기중인 30억달러의
신용공여문제를 협의키로 한 것은 일단 러시아경제의 현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 2월 미셸 캉드시
IMF총재를 모스크바로 불러들여 5일간이나 설득작업을 벌인 결과 얻어낸
소득이었다.

러시아가 이처럼 IMF의 돈공급을 애타게 고대한데는 두가지의 속사정이
있다. 하나는 시급한 외채상환을 위한 경화가 필요한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시장경제개혁에 대한 대외적인 신뢰분위기를
조성하고 서방의 이해관계를 끌어들일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서방국가들로서는 지난 1월 옐친의 개혁참모인 예고르 가이다르이후 뚜
렷한 개혁추진세력이 없는 러시아정부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경제개혁에
몰두하도록 묶어두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할수 있다.

러시아는 IMF로부터 차관을 얻는 대가로 인플레억제와 긴축정책을 약속
했다. 물가상승을 올 연말까지 7%로 억제하고 금년재정적자를 예산안상의
63조루블(약3백50억달러)에서 53조8천억루블(약3백4억달러)내로 줄인다고
약속했다.

IMF가 러시아경제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데는 두가지 근거가 있다. 하나
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물가진정세고 다른 하나는 성공적인 민영화다.

우선 물가의 경우 작년에 월평균 20%를 나타냈던 상승률이 올1월에는
22%를 기록,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나 2월부터 10%내로 뚝떨어지고
3월에는 8.7%를 보이면서 한자리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2월 의회에서 체르노미르딘총리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소기업의
80%가 매각을 마쳤고 1만4천여개의 중대기업이 주식매각을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방경제전문가들이 보기에 러시아경제는 아직 어두운 구석이 더
많다. 지난 1.4분기 산업생산이 작년 같은기간에 비해 23%나 떨어진 것
으로 공식발표됐다.

물론 이 숫자는 국영기업들이 정부보조금을 노려 생산실적을 줄여 보고
하고 새로 활기를 띠고 있는 민간기업들의 활동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체르노미르딘총리가 인정하는 것처럼 수천개의 기업이 문을 닫았고 또
다른 수천개의 기업이 부분조업을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민영화된 기업들도 재정상태가 국영기업보다 낫다고 할수도 없다. 러시아
기업들의 부채액이 25조루블에 달하고 있다. 당장 러시아 최대의 외화벌이
수단인 원유생산은 올해들어 14%이상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같은
추세라면 러시아가 금세기말께는 원유수입국으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인플레의 경우 최근의 한자리수 행진에
힘입어 러시아는 IMF와의 약속에 곁들여 내년중반까지 물가상승을 5%내로
줄이겠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서방전문가들 눈에는 인플레의 재발가능성이
더 크다.

그같은 서방측우려의 기본적인 근거가 되는 재정적자의 경우 92년에
국내총생산(GDP)대비 18.2%에 달했다가 작년에는 8%로 줄었고 올해
예산안으로는 9%로 다시 늘어날 전망이다.

IMF와 적자폭의 축소를 약속했지만 정부지출확대를 요구하는 군부 의회
농민들의 저항을 이겨낼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하나는 벨로루시와 맺은 통화동맹이다. 이 동맹에 따라 벨로루시는
자국루블화를 러시아루블화와 1대1로 교환하고 있는데 실제 시장환율은
10대1이다. 서방전문가들은 이 통화동맹만으로도 월4%이상의 인플레요인
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루블화 자체의 불안정성도 문제다. 루블화는 1년새 미달러화에 대해 3배
가까이 수직하락, 현재는 달러당 2천루블선을 넘보고 있다.

러시아정부는 IMF와 인위적인 환율조작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다행인
것은 루블화의 하락세가 최근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이다르의 경제개혁팀이 물러난 뒤 뚜렷한 개혁주체세력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서방의 우려를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경제가 아무리 어두운 상황이라도 서방으로서는 수수방관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와 같은 극우세력의 등장
이나 과거로의 회귀는 서방으로서도 피해야 할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이번 IMF의 차관제공결정에는 이러한 정치적인 선택도 뒷받침하고 있다.

<이 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