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첨단기술의 상징이자 관련산업 발전에 기반이 되는 분야이다.
반도체기술이 국가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미국 일본등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반도체산업에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반도체기술의 종주국이다. 현재 세계 반도체산업
의 총아로 각광을 받고 있는 D램, 마이크로프로세서등도 최초의 개발은
미국의 몫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86년 생산기술력을 앞세운 일본 반도체업체들의 물량
공세에 밀려 세계 반도체시장의 왕좌를 내주어야 했다. 이후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차세대 D램개발의 연이은 성공을 통해 88,89년에 세계 반도체시장
의 50%이상을 차지하는등 쾌속질주를 계속하는 동안 미국은 2위의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미국이 일본 반도체업체들을 반도체설계와 관련한 원천특허침해로 제소
하고 미일반도체협정 체결등의 통상문제를 야기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찾기 위한 몸부림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은 1위의 자리를 빼앗긴지 8년만인 작년에 다시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정상으로 복귀했다. 최근 컴퓨터산업이 급성장함에 따라 관련반도체
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 미국 반도체업체들의 성장이 두드러진 반면 일본
반도체업체들은 전반적인 내수경기 침체및 가전기기용 반도체의 상대적인
부진으로 성장세가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점유율 추이를 살펴보면 일본이 92년 42.3%에서 93년 41.4%로
감소하고 미국은 92년 41.5%에서 93년 41.9%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의 성장잠재력을 나타내는 설비투자의 경우에도 미국은 일본을 크게
앞질렀다. 작년의 반도체관련 설비투자 상위 5개업체중 미국은 3개업체,
일본은 1개업체가 포함되어 있다. 인텔 모토로라 TI등 미국의 상위 3개
업체들의 설비투자액은 무려 35억달러에 달해 일본의 상위 3개업체의 14억
달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일본이 각기 강세를 보이고 있는 제품분야를 살펴보면 이와 같은
양적지표의 변화가 미국의 반도체산업 경쟁력회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실질적인 경쟁력 우위를 제대로 반영하기 시작한 것임을
알수 있다. 미국은 현재 탁월한 기술개발력을 바탕으로 고성능 마이크로
프로세서, DSP(Digital Signal Processor), 통신기기용 반도체등 성장성도
높고 부가가치도 큰 분야에서 거의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D램을 비롯한 메모리소자, 가전기기용 반도체, 저가형 ASIC(주문형
반도체)등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최근 컴퓨터 셀룰러폰등 첨단정보통신기기의 고성능화가 급진전되고
선진국들의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감안할때 미국이 경쟁우위를 지니고 있는 분야가 더욱 각광받을 것이 확실
하다.

더욱이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한 D램분야의 경우 우리나라 반도체업체들의
추격이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동분야에 대한 일본의 입지가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반도체업체들은 97년께 세계 D램시장
의 40%이상을 차지해 메모리분야에 있어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반도체산업에서 미국과 일본간의 경쟁력격차는 93년을 고비로 향후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생산능력에 기반을 둔 경쟁력이 일시적인 성과는 거둘수
있지만 기술개발력의 보완없이는 장기적으로 유지될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현재 생산기술력 향상에 보다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우리나라
반도체업체들로서는 깊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