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일후 크고 작은 전쟁이 없는 날이 없었다. 거기에는
언제나 죽음의 망령이 따르게 마련이었다. 전쟁마다 그럴듯한 치장된 기치
가 있었지만 종내는 살륙이라는 참담함으로 귀결되었다.

전쟁이라는 괴물이 얼마나 가공한 것인지는 20세기에 들어와 겪은 세계
양차대전의 참상결과를 보면 더욱 역력해 진다. 1차대전은 850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2차대전은 무려 4,200여만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가공할 전쟁 못지 않게 인간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압살한 것은 정치적
숙청이었다. 정치적 숙청이라면 스탈린 치하의 "피의 숙청"(1934~38)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레닌이 죽은 뒤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스탈린이 일인
독재체제를 더욱 굳건히 하고자 공산당 군부 관료 기업 학계 문화계등
거국적인 대숙청을 자행한 것이다. 처형되고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간 사람의 숫자가 헤일수 없이 많아 정확한 것을 아직까지도
추산조차하지 못할 지경이다.

2차대전중의 러시아인 사망자가 전사 1,360만명을 포함하여 무려 2,000만
명으로 당시 소련인구의 10분의1에 해당되었다는 사실에는 견줄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대권에 앞서 또한번의 상상을 초월한 전쟁을 치룬것이나
마찬가지였음을 가늠하게 해 준다.

그 때 체포된 문인들만해도 2,000명가량이나 되었다. 그중 1,500여명이
처형되거나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갔다. 그런데 최근 KGV문서보관소에 비밀리
에 보관된 숙청작가들의 압수 일기와 원고, 진술서등이 속속 발굴되어 그
잔학사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안톤 체호프 이후 러시아의 가장 뛰어난 단편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이사크
바벨리(1894~1941)가 처형 전날 강제 수용소에서 쓴 유서(최후진술서)의
내용은 아무리 혹독스러운 고문이라할지라도 인간의 진실성을 말살시킬수
없음을 일깨워 준다.

"나의 진술서는 억울하게 체포된 상태에서 협박을 받아 작성된 허위
서류다" 1935년 파리에서 열린 문화옹호작가회의에 소련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을때 만난 프랑스작가 앙드레 말로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
로 39년 체포되었다.

혁명이라는 이상한 폭풍에 휘말린 사람들의 적나라한 못습을 그린
"기병대"라는 단편집(1931)에서 그의 문학적 정화는 집약된다.

24년 문단데뷔뒤 15년간의 짧은 창작활동에서 보여준 그의 역정을 되돌아
보면서 북한의 바벨리는 없는 것인지 생각을 멈춰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