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활의 예의를 중히 여기던 민족이었다. 비록 취하고자 마시는
술이라 할지라도 심신을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어른께 공경의 예를
갖추었으며 남에게 실례를 끼치지 않는것이 우리 음주의 예절이었다.
조선조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삼봉집"에서 "술은 즐겁게 마시되 함부로
하지 않으며 엄히 하되 어른과 소원해지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는 "소학"을 생활규범으로 삼았다고 할수 있는데 "소학"에는
어른이 술을 들기전에 먼저 마셔서는 아니되고 또 어른이 주는 술을 감히
사양할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술을 못하는 사람이 마지못하여
술잔을 받았을 경우에는 짜증을 내지 말고 점잖게 입술만 적신뒤에 잔을
놓도록 하고 있었다.

술상에 앉으면 술을 주고받는 수작을 하고 잔에 술을 부어 돌리는 행배를
하며 권주잔을 비우고 되돌려주는 반배를 해야한다. 반배는 가급적 빨리
하며 주불쌍배라 하여 자기 앞에 술잔을 둘이상 두지 않는것이 주석에서의
예절이었다. 술은 권하는 맛에 마신다는 우리의 "정다운"주도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수 있다.

100여년전 미국 개신교의 선교사가 우리사회의 이같은 풍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 것인가 짐작할수 있다. 개신교회에서 지금도 금주.금연운동을
벌리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적 측면이라기 보다 우리 전래의 폐습을 타파
하려는 사회운동의 차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술은 권하는 맛에 마신다
는 우리의 "술문화"는 그리 쉽사리 살아지지 않는다. 박정희정권때 어느
야당의원이 "술잔 안돌리기운동"을 추진하였지만 그것은 운동으로 그치고
말았다.

오히려 우리사회는 술을 강권하는 "노.털.카", 즉 술잔을 놓지않고 중간
에 비우지 않으며 카소리를 내지 않는다는등 단숨에 마시게 하는 풍조가
팽배하는 형편이다. 이같이 술마시기를 강권하는 사회풍조라는 것은 이유야
어떻든간에 비합리적인 일이 아닐수 없다. 특히 우리사회의 경우는 군사
문화적인 요소가 알게 모르게 우리 몸에 배게된 유산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
된다.

신학년을 맞아서 경향의 각대학에서는 신입생 단합대회라는 명목으로
사발로 술을 강제로 마시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신입생 두사람이 과음
으로 숨지고 말았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물론 악의로 한 일은
아닐것이고 대학생의 낭만이라할까, 젊음의 패기가 저지른 일이라 할수
있지만 한마디로 상식밖의 일이 아닐수 없다. 음주뿐만 아니라 우리생각이나
행동양식이 좀더 어른스러워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