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찰을 다 읽고난 야마모토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휴전을 제의하도록 권유를 한 다음,그럴 경우 나가오카번의 중립문제를
다시 협상할수 있다는 요지의 글인데 가와이의 대역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기가 그 제의에 대하여 가타부타 결정까지 내릴 처지는 아니었기 때문
이다.

가이바라는 가와이가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망설이고 있는줄 알고서 정중
하면서도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가와이 도노, 아무쪼록 야마가다 참모께서 제의하신 것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귀측의 군사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하는게 현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번에 회견을 하셨던 이와무라 군감과는 달리 야마가다
참모께서는 나가오카번의 중립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협상이 별 어려움 없이 타결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잘 헤아려
서 좋은 회답을 주시기 간절히 바라옵니다"

야마모토는 천천히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나서,

"잠깐 기다리고 있으시오. 이런 중대한 문제는 나 혼자서 결정을 할수가
없으니 가로들과 의논을 해보고 오리다"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마모토는 그 서찰을 가지고 가와이에게로 갔다. 서찰을 읽어본 가와이
는 대뜸,

"누구를 놀리는 거야 뭐야"

하고 내뱉었다.

야마모토는 고려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었는데 가와이가 그렇게 나오자 좀
머쓱해지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먼저 휴전을 제의하면 다시 중립문제의 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네 체면을 유지하려는 속셈이죠? 자기네가 먼저 휴전을
제의해 온다면 고려해 볼수도 있을텐데. 안그래요?"

"이미 때는 늦었어요. 그쪽에서 먼저 휴전을 제의해 온다고 하더라도 이제
우리 나가오카번의 중립문제를 협상할수는 없어요. 열번동맹에 가입했을 뿐
아니라 지금 아이즈를 비롯한 몇몇 이웃 번군과 연합을 해서 작전을 펴고
있는데 우리만 다시 중립을 유지하려고 들다니 말이 되나요? 그건 배신행위
밖에 아무것도 아니에요"

야마모토는 더욱 머쓱해지며 말문이 닫혔다.

"이제 끝까지 싸우는 길밖에 없어요. 어떻게든지 장기전을 펴서 겨울이
오면 오우에쓰열번동맹이 총병력을 동원해서 천하를 판가름하는 대결전을
벌여야 해요"

"알았습니다. 가서 그렇게 통고하지요"

야마모토는 다시 가짜 가와이가 되어 회견장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