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이제 40억년의 지구역사상 처음으로 "지구사회"를 이루려한다.
이제 지구라는 행성의 물과 땅과 공기와 태양의 빛을 받고 사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들은 처음으로 지구가족, 지구사회, 지구공동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들의 생명의 안전과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지킬수 없다는 인식의 공유
가 전개되고 있다.

이제 국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계인류의 공통된 문제군(Global Problem-
atique)으로서 인구 자원 에너지 환경 도시과밀화 교통 노령화 가족파괴
마약 핵 생물화학무기 테러 빈곤과 난민..문제들에 대하여(국제적 관점이
아니라) 인류적 지구적 세계적 관점에서 여러결정과 정책들을 조직화해야
되는 단계에 있다.

"A Strategy for the Future(1974)"의 저자이자 피아니스트이며 교수인
어빈 라즐로가 말하는 세계시스템 구축의 제2국면에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세계항상시스템"이나 이마누엘 칸트가 1795년 그의 "영원한 평화"
(Perpetual Peace)에서 그린 "세계공화국"이 한시대안에 성취되리라고
성급히 단정하는 과리상주의자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역사와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세계적 지구적단위의 통합화라는 큰
공전의 궤도를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런 인류로서의 공동체
형성에 대한 진보적 자유주의적 이상을 버려서는 안되고 신념과 대책을
키워야 한다.

그것도 선도적으로 키우고 비전과 원리와 정책을 정밀하게 연구해 나가야
한다. 연구에 그치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거래하는 4대강국중 일본을 제외하고 미국 러시아 중국은 사실
잠재력만으로 보면 식량 자원 에너지 기술 공간의 측면에서 세계에서도
가장 자급자족적 구조를 가질수 있는 나라들이다.

오히려 한국 스위스 벨기에 스웨덴 네덜란드 이스라엘등이야말로 식량
자원 에너지의 절대적 수입국(대외의존형소국)으로 그들의 생명의 안전과
복지를 지구사회에 더 의존하고 있다.

한국은 더구나 핵의 문제, 남북빈곤의 문제, 난민(보트피플)의 문제에다
심각한 환경의 위협아래 있다. 하나는 우리자신의 세계에 유례없는 과도한
수도권 집중과 도시과밀화로 인한 환경의 문제이며 또 하나는 중국의
공업화와 개방이 갖고 올 에너지자원 수급문제와 환경악화 요인이다.

만일 중국의 에너지소비가 현재 추세대로 증가하면서 1인당 소득이 한국
수준 또는 대만수준이 된다고 가정하면 중국의 에너지소비량은 전아시아와
유럽의 에너지소비량을 합친것 보다도 많아진다. (1992년기준 중국의 1인당
에너지소비량은 석유환산 0.59toe(석유환산t) 총에너지소비량은 6억8,000만
toe이고 한국과 대만의 1인당 소비량은 2. 66toe와 2.72toe이다.

1992년 현재 아시아 전체 에너지소비량은 18억8,500만toe이고 유럽은 14억
700만toe이고 미국은 19억6,000만toe이다) 또한 전세계,특히 미국측이 신규
원자력발전 계획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인데 비해 세계에서 최고의 과밀인구
집중지역인 한국 일본 중국 대만만이 2010년까지 현재 가동중인 70개와
같은 70개의 신규원전을 계획중이거나 건설중에 있다.

북한의 핵개발이 세계적 군축과 탈냉전의 세계추세에 역행하듯이 아시아
인구과밀지역의 집중적인 원전건설은 사전 사후문제관리에 대한,그리고
폐기물처리에까지 충분한 안전장치의 강구없이 추진할 경우 새로운 재앙일
수 있다.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은 80년대말 외국기자와의 회견에서 만일 서방측이
중국의 경제개발을 지원하지 않으면 1억2,000만명의 보트피플이 태평양을
떠다니게 될것이라고 위협했다. 중국이 경제성장을 해도 경제성장을
못해도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한국은 바로 이러한 인류공동의 문제군들을 한꺼번에 안고있는 세계적
문제의 핵심이자 실험관이 되었다.

한국이 어떻게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이땅의 물과 산과 공기와 바다와
자원과 에너지와 핵과 군사분규와 도시과밀과 경제성장과 세대전쟁과
노령화와 복지를 관리하여 다른 문화.문명공동체와의 관계를 평화롭게 꾸려
갈 것인가.

이 인류의 문제,지구사회공동체의 문제는 가지려고 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주려고 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인류공동체인 남에게 줄것을 마련하고 실제로 주어야 한다. 한국은
1996년 OECD가입을 결정했다. 그 의무조항중의 하나로 후진국원조 조항이
있다. GNP의 1%를 목표로 그중 무상원조와 공공차관(ODA)0.7%,민간상업차관
0.3%를 기준으로 하고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목표와 기준을 지키고 있는 나라는 스웨덴 뿐이다.
잠정적으로 ODA 0.4%가 기준으로 되어있는 셈이다. 현재 우리의 ODA는
0.06%에 불과하다. 우리는 "세계적 공동체" 지구사회의 주동자가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빠른시일내, 예를들면 2000년까지 ODA를 GNP의 0. 5%까지
올리는등 액수에도 충실해야 한다. 뿐만아니라 그내용에서 세계공동체의
중심국가다운 안목과 뜨거운 가슴이 반영되어야 하고 프로젝트결정에
치밀한 전략과 정열이 필요하다.

북한과의 통일비용도 이런 세계공동체적 측면에서 검토해 볼만하다.한국의
조건이야 말로 세계 어느나라 어느 민족보다도 더 평화적이기를 요구하고
세계의존적이다. 에너지 자원 무역의 해외의존도,지정학적특성,도시과밀과
교통 환경조건,핵과 군사조건,인구와 공간조건,땅과 바다와 하늘의 조건 그
모두는 우리가 범인류적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의식과 행동규범을 창조하고
실천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또 한국의 역사상 이웃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로서 아시아.
태평양에서 평화에 대한 정당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접촉점이요,하버드대 새뮤엘
헌팅턴교수의 "문명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가설에 의하면 문명
끼리 부딪치는 "단치"(Fault)지역에 속한다. 우리가 이런 지리적 문명적
조건에서 생존과 평화에 충실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관련되는 대륙문화와
해양문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을 모두 포용하거나
모두를 초월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 비전 철학 계획 정책을 창조하는 수
밖에 없다.

한국의 굴절많은 경험과 삶의 조건 그리고 샤머니즘 불교 유교 기독교
까지를 흡수하는 강한 소화력은 우리가 우리조건에 충실하면 반드시 인류
지구사회가 요구하는 새 가치규범을 창조할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공동체와 세계공동체를 연대하고 한국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를 결속하고
한민족의 생존과 인류의 생존을 융화하려한다면 우리는 4대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세력균형상의 불리가 유리로 전환되고 반도로서의 단층이 접합점
으로 변전되고 굴절많은 경험은 다문화흡수의 무대가 되고 가장많은 인류
문제군을 껴안고 있는 우리의 고민은 세계 보편적 체제 발명의 모체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전환수렴은 자유와 동시에 자기 행위의 남(인간 사회 자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도덕적 책임과 자발적억제,지구적 공유물과 공공재
관리에 대한 자율적 공헌,수직적편리보다 수평적문제에 대한 책임감
같은 개인 및 집단차원의 변화를 요구한다.

한국의 조건과 한국의 경험,그리고 한국의 가능성은 한국이 세계평화의
중요한 원천의 하나가 될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스위스의 전쟁 비극의 체험이 세계 적십자운동을 창조했고 스웨덴의 농업
시대의 가난이 공업시대들어 노벨상으로 승화했고 일본은 미국이 내린
히로시마(광도)원폭과 맥아더헌법으로 평화국가로 변신했다.

한국은 그 비극과 가난과 전쟁과 환경과 지정학.지경학의 조건이 분명
스위스보다 스웨덴보다 일본보다 더 차원높고 더 깊고 더 선명한 평화의
철학과 비전과 상징과 정책을 잉태하고 있다.

나와 이웃과 나라와 인류의 지구공동체를 일치시키는 노력을 충직하게
하면 반드시 한국이 새 지구사회의 가치규범으로서 평화의 철학과 상징과
정책의 발신지가 될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진정 민족주의에 충실할수록 세계주의
지구사회에 가까워지고 세계주의 지구사회의 문제를 충실히 해결하고자
하면 그럴수록 한국의 조건해결에,즉 한국민족주의에 친근해질 것이다.

한국과 한민족은 보통의 나라 보통의 겨레 보통의 시민으로서는 생존과
평화가 불가능하다. 한국이 보통의 나라로 산다함은 현재는 4강에,그리고
근대이전에는 대륙과 해양세력의 고전적 충돌에서 편들거나 사대주의로
생명을 부지했던 그 제도 그 관행을 탈냉전과 더불어 중국과 일본이라는
고전적세력 배치로 역사가 환원됨에 다시 그 비극을 되풀이한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밀도높고 충실하고 비상한 차원의 가슴과 머리와 손 발로써만
생존의 운명이 개척되고 평화를 선택할수 있는 그런 나라 그런 사람들의
비상한 공동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