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자동차는 큰폭으로 늘고 있으나 자동차문화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0
0 목소리가 높다. 자동차문화의 퇴보는 이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을뿐 0
0 아니라 수출산업화 해야하는 자동차산업 자체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0
0 올바른 자동차문화를 확산시킴으로써 자동차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유도 0
0 하기 위해 각계인사들의 칼럼을 매주 1회 (수요일) 게재한다. 0

0 < 편 집 자 > 0

몇년전부터 우리나라는 교통혼잡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연휴나 명절때
는 혼잡도가 극에 달한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자동차가 급격히
늘어난데 비해 도로가 부족한데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도로망구조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로는 "서울-극중심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남지방에서 온 트럭은 다시 영남으로 돌아간다. 영동지방에서 온 트럭도
강원도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시스템은 공차율이 높아 낭비가 많다는 것은
상식이다. 영남에서 온 트럭이 서울과 인천.서해안 호남지방을 거쳐 다시
영남으로 돌아간다면 운행회수도 좋고 일손부족도 줄일수 있는데 말이다.
도로교통의 정체에서 오는 경제적 손실도 천문학적 숫자에 달하고 있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국가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도로는 선행투자를 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접어들면서 거의 10년간 GNP성장에 버금가는 투자를 하지 못했다는데 도로
교통의 심각성이 있다.

오늘의 교통혼잡은 역사적으로 따지면 당연한 귀결이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우리선조들은 "무도칙안전"이란 생각에서 도로를 않닦는것이 국토
방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도로건설을 의도적으로 기피했다. 우리는 유사
이래 931회에 달한 이민족의 공격을 받아왔다. 그 대부분은 북쪽으로 부터의
공격이었다. 그러니 중구의 훌륭한 도로사정을 알기 때문에 역기능을
감안해서 길을 닦지 않았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나.

도로가 없어 주민들의 접촉이 막힘으로서 좁은땅 안에서 골골이 사투리가
굳어졌고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은 산나물을 모르고 내륙사람들은 생선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았다. 또한 물자의 유통이 막힘으로서 지역마다 물가가
들쑥 날쑥 했다는것이 18세기 실학자들의 지적이다.

이러한 상태였는데도 나라(왕실)에서는 길을 닦은 수령들의 목을 치고
귀양으로 다스렸으니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뭘 몰라도 한참 모른 암흑
시대가 우리의 역사였다.

교통시설의 정상적인 발달은 우선 역마차시대를 거쳐 도로교통시대 철도
시대 고속도로시대 고속철도시대로 들어가는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서양과 같은 역마차시대는 없었지만 도로교통시대에 들어가기전에 1899년
경인철도의 건설로 철도가 먼저 들어오는 이변을 겪었다. 도로는 철도보다
10년이나 늦은 1910년 한일 합병이후 이른바 "신작로"란 이름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일제가 철도건설에 치중한 것은 그들의 대륙정책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지만 국내 유통의 주역인 도로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도 하다. 현재 일본은 110만km의 도로연장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5만
8,000km에 불과하다. 20분의1수준이다. 국토면적을 감안해도 6분의1 수준
이다.

요즘 갑자기 사회간접자본투자를 외치고 있다. 문제는 종래 위정자들이
공업단지나 공장건설과 금융만을 경제로 알고 도로 항만 철도등 사회간접
자본을 경제로 인식하지 못한데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