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 한마디로 거인이다. 지난해 30조7천억원의 매출은 현대 삼성그룹의
50억원대에 비기면 적지만 여타 초대형 기업을 넘어서는 거대한 규모다.

농협중앙회장은 총조합원 2백2만명과 6만6천여 직원을 거느리는 총수다.
우리나라 웬만한 1급기업들과는 비교도 되지않는다.

고도의 공익성을 띠는 농협 회장자리이지만 놀랍게도 그는 아무에게도
책임을 지지않는다. 정부에 대해서도 농민에 대해서도 아무런 실질적인
감독과 감시를 받지않는다.

회장은 농협이라는 거대조직 내부에서만큼은 막강의 3권을 쥐고있다.
이사회는 상임,비상임이사 각11명을 총회에서 박수를 통해 구성하면
그뿐이다. 여기에 사업과 관리 모두가 그의 사인하나면 끝난다. 말하자면
임자없는 조직에서 소유와 경영을 모두 장악한 슈퍼 파워맨이다.

정부의 간섭도 없다. 지난 88년 회장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엔 정부도
아예 손을 땠다. 물론 농민에게 농민조직을 돌려준다는 취지였지만 결과는
주인이 아닌 관리자에게 주인집을 송두리채 넘긴 꼴이됐다.

상급관청인 농림수산부는 지난 88년 이후 지난해8월까지 단한차례도
농협을 감사하지 않았다. 임시국회에서 이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고
난 8월들어서야 5년만에 단열흘간의 종합감사가 있었을 뿐이다. 이감사
결과도 시정조치 몇건 뗀데 그쳤다.

농협중앙회의 주인이랄수있는 단위조합들은 오히려 중앙회의 눈치를
볼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농협이 전력을 쏟고있는 은행업,즉 신용사업의
규모는 지난해 17조6천억원에 달했다. 돈줄을 쥐고있으니 파워도
따라갔다. 그위세 앞에 농민은 늘 채무자 신분일 뿐이 었던 셈이다.

결국 농협은 관도 아닌 그렇다고 순수한 민도 아닌 거대한 독립
관료조직으로 자리매김되고 말았다.

한호선 회장의 구속으로 비로소 "공룡 농협"이 개혁의 도마에 오른
것이다. 농협수술의 결정적 호기를 맞았다는 한 농수산부 고위관리의
말을 뒤집는다면 그만큼 농협의 개혁은 그성격의 특수성에서 오는
어려움도 컸다는 얘기다.

농협을 제위치로 돌리는 수술은 세가닥이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는 제1의 과제다. 제2의 과제는 구조의 개편이요 효율의 제고라
할수있다.

농협내부의 구조개편은 그동안 농협이 자체안을 내면 이를 정부가 받는
형식으로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이번 사건을 기화로 농협자체안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약해질 전망이다. 그대신 농업발전 위원회가 안을 내고 이를
정부가 받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제안입법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2일 제5차회의를 가진 농발위에서는 농협이 근본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의견들이 주조를 이루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9일엔
6차회의를 열어 농협법 개편의 골조를 토론할 예정이다.

김양배 농림수산부 장관 역시 농협을 그대로 방치할수는 없다고 밝혀
근본적인 농협개혁책이 준비중임을 시사했다. 정부는 중앙회의 연합회로의
개편과 신용사업의 분리를 복안으로 갖고 여론을 탐색하는 중이다.

회장 권한의 조정,집행부와 이사회의 분리가 농협내부 구조의 개편이라면
이는 농협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경제사업 추진을 위해서도 신용업무의 겸영이 불가피하다는 농협측 주장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분위기이다. 방만한 경영과 비효율적인 구조자체를
개선하지 않으면 사업의 효율도 저해될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지난해 경제사업의 내용을 들여보면 농협측의 방만한 운영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금방드러난다는 것이 농수산부 한고위관리의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전국 2백18개의 농협슈퍼는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1백53개
직판장과 68개 공판장도 모조리 적자였다. 평균 10%정도 싼가격으로 공급
하고는 있지만 세제혜택이 있고 생산조직과의 직접적인 연계를 생각한다면
부실경영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문제는 농협이 경제사업 경영에 필요한 농민운동체 본연의 정신을 잃고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개혁안 역시 농협에는 뼈아픈 재출발을 요구하는
가혹한 것이 될것으로 전망된다.

<정규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