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후 경기회복국면에서 물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올것이 왔다는 느낌까지 든다. 통화주의자들의 정견은 "돈을 풀면
반드시 경기는 부양되지만 물가가 오른다"는 것이다. 바로 그들이
강조하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이다.

작년의 "신경제"활성화정책이 통화량의 과다증가를 수반하였고,
이러한 일련의 정책이 시차를 두고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볼때 최근의 경기회복 패턴은 통화주의자들의 주장을 연상시키기에
족하다.

그러나 돈을 주무기로 하는 경기부양책은 확실히 듣는 것 같지만 이
부양책이 물가수준에 얼마나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를
판단할수 있는 실증적인 데이터를 필자는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필자의 견해는 단기조정과정에서 물가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복잡다기하다는 것. 특히 기대와 확신등 심리적인 요인이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좀더 자신을 갖고 말할수 있는 추정은 최근 물가상승의
핵은 신경제이전부터 형성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의 경기
활성화국면을 놓고 회복국면이다, 과열조짐이라는 등의 경기논쟁이
벌어진 것도 물가불안이 촉발한 현상이 아닐까. 이리하여 성장과 물가
라는 두마리의 해묵은 토끼가 다시 논쟁무대의 전면에 기어 오르고
있다.

과연 성장과 물가는 상충적인가. 보완적일 수는 없을까. 이 스테레오
타입을 이번 기회에 정리해 보자.

잘 알다시피 케인즈가 화폐수량설을 전면 부인하지 않았지만 물가
수준에 미치는 통화량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 것은 사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체로 케인지언들은 인플레이션을 비용인상(코스트 푸시)
현상으로 해석하며 비용이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비용인상만 잡으면
가격수준도 잡을 수 있다고 본다. 신경제팀이 작년에 요소가격(특히
임금)을 억제하는 소득정책을 펴면서 돈을 푸는 속도를 빨리 했을 때
캐인지언노선을 따르고 있다고 해석한 이코노미스트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케인지언의 노선을 따른다면 돈을 푸는 것(전문적으로는
통화량증가의 가속)을 수반하는 재정금융정책이 물가상승이 없는
성장을 이끌어 낼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 반대의 경험을
한 나라들이 많은데 이들은 물가가 올라서 임금인상의 가이드라인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것이 추가적인 물가상승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목격했다. 임금협상의 시기를 앞두고 우리가 걱정하는 점이
바로 이러한 악순환이다.

돈을 연결고리로 하는 성장과 물가의 관계에 대한 통화주의자들의
생각은 이렇다. 통화량의 증가라는 명목적인 변화는 단기적인 생산
증대를 일으키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물가상승이라는 명목적인 변화만을
수반한다. 실물경제의 성장은 생산자원의 질적및 양적변화, 예컨대
노동력의 증가및 노동생산성의 향상과 기술혁신등 실물경제적인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 주장으로부터는 "실물적인 요인이 가져다주는 실물경제의 성장은
물가안정과 동행할수 있다"는 추론을 보다 안심하고 끄집어 낼수 있다.
이런 근거에서만 구조개선과 기술혁신을 통해서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을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그러면 명목적인 경제요인은 명목적인 변화만을 일으키고, 실물적인
동인이라야 실물성장을 가져다준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이
매우 많은 가운데서도, 왜 어떤 이코노미스트들은 특히 정책형성과정에
참여할때 돈을 무기로 하는 경기부양책을 쓰려는 유혹(때로는 미혹)에
빠져 드는가. 필자는 통화정책이라는 무기가 갖는 단기적으로 강력한
효과가 이코노미스트들을 유혹하고 있지 않는가하고 생각할때가 많다.
이러한 짐작은 통화주의자와 케인지언들이 통화정책의 역작용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하고 있지만 경기진작에 대한 통화정책의 유효성은 다같이
보고 있다는데 기초를 두고있다. 특히 이러한 유혹의 정도는 정치적인
고려가 정책형성과정에 뒤섞일때 더욱 증폭되는것 같다. 경제학이 고도로
발달한 미국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케인지언과 통화주의자가 번갈아가면서
경제정책스텝을 하고있는 것도 같은 관점에서 해석할수 있을 것 같다.

생각컨대 우리사회는 부족한 것을 참고 견디는 정신이 제대로 배양되어
있지 못하고 조급한 변화를 바라는 경향이 짙다. 국민의 기대감이 부풀게
되는 정치적 "환절기"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범사회적인 이런 조급증은 관변이코노미스트들로 하여금 설사 역작용이
있더라도 약효가 빠른 정책수단을 찾게하는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할수도
있다. 정치적 요청이 경제논리를 압도하게 될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조급증 신드름"에 있어서는 업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92년이래 민간
연구소 두뇌들의 목소리를 빌려 줄곧 돈을 풀어달라고 요청한 곳이
바로 업계였다. 느슨한 통화정책과 낮은 이자율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다.

"급조"와 "급조"로는 경제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우리가 구조개선
이라고 할때는 언제든지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는 실질적인 변화안에서만 성장과 물가안정이라는
두마리의 토끼가 잡힐 여건이 마련될수 있다.

정책에 참여하는 이코노미스트들에게도 바라는 바가있다. 아무리 조급
하더라도 경제를 순리에 맡기자는 하이에크나 프리드먼유의 자유스러운
입장에 항상 눈을 주면서 소신있는 정책을 펴주었으면 한다. 이러할때만
전문적인 것이 전문가에 맡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