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번의 "야쿠닌"(역인:공무원)이 되어 근무하던
가와이는 번주의 마키노다다유키의 눈에 들어 집정직인 가로로 중용되었고,
마침내 필두가로,즉 번정의 최고책임자가 되었다.

이미 막부의 세력이 크게 기울어져 요시노부가 대정보환을 선언한 다음
명맥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던 그 무렵이었다.

번의 실권을 장악한 가와이는 크게 두가지 정책을 내세웠다. 첫째는
무장중립이었고,둘째는 봉록의 평준화였다. 격동으로 치닫는 시국을 맞아서
나가 오카번은 엄정중립을 유지한다는 것이고,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하게
무장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군과 민이 하나로 결속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면 번력을 집결하여 중립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공평한 봉록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위직과 하위직의 봉록의 차이가 너무 심하니,어느
정도 평준화를 기한다는 것이었다.

첫번째 정책인 무장중립을 위해서 가와이는 군비 강화에 몸소 발벗고
나섰다. 에도 유학 시절 그는 곧잘 요코하마에 가서 서양의 새로운 문물에
접하고 군대와 무기를 눈여겨 구경하곤 했었는데,이번에는 직접 무기를
구입하러 그곳에 갔다.

요코하마에는 "죽음의 상인"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국제 무기상인
에드워드 스넬이 있었다. 가와이는 그와 흥정을 하여 대포와 소총등
여러가지 병기와 탄약을 다량으로 구입했고,가드링건이라는 총도 구매
했다. 총은 연사식이어서 그당시로서는 경이로운 공포의 무기였다.

기관총의 일종인 가드링건은 그무렵 일본에 세개밖에 들여오지 않았는데,
그중 두개를 가와이가 손에 넣었던 것이다. 한개를 사쓰마번에서 구입했다.

가와이는 무기 구입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끌어모을수
있는 돈은 모조리 끌어모았고,심지어 에도의 나가오카 번저에 있는 보물과
값나가는 집기를 남김없이 요코하마의 서양인들에게 고가로 매각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번의 비축미를 쌀값이 비싼 북해도의 하코다데까지 운반해
가서 그곳에서 팔기도 했다. 그렇게 극성을 떨어서 십수만량이나 되는 돈을
만들어 모조리 무기 구입에 사용했던 것이다.

대포가 무려 삼십문을 넘었고,최신식의 미니엘총도 수백 정이나 되었다.
번내의 사무라이 집안에는 한 가호에 한 자루씩 총을 배당해 주었다.
그러니까 일단 유사시에는 말하자면 번민개병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