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를 필요가 없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겠다.” ‘선제성(preemptive)’을 생명으로 여기는 통화정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발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 수장들이 마치 유행처럼 이런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에서 중앙은행 총재 역할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다.Fed는 1913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가장 치욕적으로 여기는 두 가지 실수를 했다. 하나는 ‘에클스 실수’다. 1929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 취임 직후 미국 경제가 침체를 보이자 당시 매리너 에클스 Fed 의장은 금리를 내렸다. 하지만 그 후 물가가 곧바로 오르자 급하게 금리를 올렸다가 대공황을 낳았다.다른 하나는 ‘볼커 실수’다. 2차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폴 볼커 전 Fed 의장은 고심 끝에 금리를 올렸다. 장기간 갈 것으로 봤던 물가가 빨리 잡힐 기미를 보이자 성급하게 금리를 내린 것이 화근이 돼 물가가 다시 올랐다. “볼커의 키가 1센티미터만 작았더라면”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아쉬운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1980년대 이후 Fed의 통화정책을 보면 이 두 가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에 선제성을 잃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최근 사례로는 코로나19 사태 후유증으로 물가가 올랐음에도 에클스 실수를 우려해 금리 인상에 주저한 것이다.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나중에는 ‘평균물가목표제’까지 도입해 방관하다가 2022년 3월에 가서야 첫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이달 들어서는 금리 인하 시기까지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폐지와 상속세 개편 논의가 불붙었다. 성태윤 대통령식 정책실장은 어제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종부세를 폐지하고, 상속세 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고려해 30% 수준까지 인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 세목은 모두 부자에 대한 징벌 차원에서 도입됐지만,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뛰면서 실제로는 중산층을 정조준하는 등 폐해를 양산하고 있다. 그 부작용이 임계점에 달한 만큼 이참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종부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강남’의 고가 및 다주택 보유자를 잡기 위해 도입했지만, 그 효과는 거꾸로 나타났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2022년 기준 납세자가 1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늘어났다. 전체 주택 보유자에서 종부세 납부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8.1%로 뛰었다. 소득이 없는 노년층과 퇴직자에게도 무차별적 세금 폭탄이 투하되면서 커진 조세 저항은 정권교체의 단초가 됐다. 게다가 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된 결과 전셋값을 끌어올리며 무주택 서민 주거까지 위협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물론 야권 일각에서도 개편론이 분출하는 배경이다. 대통령실이 밝힌 대로 종부세 제도를 없애고, 필요시 재산세에 일부 흡수하는 게 마땅하다.상속세 개편의 필요성은 이제 귀가 따가울 정도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를 견디지 못해 가업 승계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건 두말할 필요 없다. 경제 발전과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해 부자세가 아니라 ‘중산층세’가 돼버린 지 오래다. 세율을 최소한 OECD 평균 수준으로 내리고, 28년째 5억원에 묶여 있는 자녀·배우자 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배임죄 폐지 주장을 강하게 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에 산업계 우려가 커지자 이에 대한 보완 내지는 법적 균형 모색 차원으로 평가되지만, 배임죄 폐지론은 그 자체로 타당하다.이 원장이 검사 때 기소 실무 경험을 내세우며 폐단을 역설한 배임죄는 기업계가 오랫동안 폐지를 요구해온 숙원 과제다. 형법의 일반 배임(제355조) 외에 업무상 배임(356조), 기업인에 대한 특별배임(상법 제622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제3조) 등의 강한 처벌 규정이 문제다. 특히 최고 10년 징역형이 가해지는 업무상 배임죄는 위배 행위나 손해의 범위가 워낙 넓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구형과 선고의 폭도 지나치게 넓은 ‘고무줄 처벌’이어서 기업 경영인에게 공포의 법이다. 범죄 구성 요건이 모호하다 보니 1, 2심의 유무죄가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법원에서 무죄율도 다른 일반 형사 범죄보다 월등히 높다.판사들까지 머리 아파하는 이런 ‘억지 법’의 과도한 처벌 규정은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주요 선진국이 사기죄 등을 운용하면서 배임죄는 배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되는 무수한 한국의 ‘경제 범죄’ 케이스도 대다수 선진국에선 형사처벌 대신 손해배상 등 민사 소송으로 해결된다. 이 원장이 이번에 작정한 듯 문제 제기한 것도 명백한 횡령이나 사기, 일반 배임이 아니라 경제인이 주 대상인 업무상 배임죄다.배임죄 폐지가 국무위원도 아닌 금감원장이 기자 브리핑 한두 번 한다고 바로 성사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형법과 상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