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공원으로 조정돼 1일 개장됐다.
`무궁화동산''으로 이름지어진 이 공원은 안가 5채를 헐어 조성한 것
으로 모두 3천2백평규모, 공원입구에는 대통령의 친필로 새겨진 `무궁
화 동산''기명석이 세워졌으며 중앙에는 궁정동을 상징하는 우물도 만들
어 졌다.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오후 있은 공원 개원식에 참석해 개원 테이프를
끊은후 "이 공원은 단순한 시민공원이 아니라 과거권위주의시대의 밀실
정치를 깨끗이 설치한다는 의미깊은 역사의 현장"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립국각관현악단의 개원기념 야외공연도 펼쳐졌다. 음습한 `밤
의 문화''가 `낮의 문화''로 바뀐 셈이다.
안가는 `어두운 정치''의 대명사였다. 공작정치와 돈과 여자와 술이
있는 곳이었다. 시국사건 때마다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 장소로 이
용됐다. 대통령 장관등 고관들의 주연장으로 활용됐다. `여자가 낀 연
회''도 많았다. 야당사람을 불러 회유하는 장소로도 이용됐고 재벌들을
만나 돈을 받는 장소로도 쓰여졌다.
이날 개장한 공원자리는 특히 지난 79년 10월26일 저녁 박정희전대통
령이 당시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최후를 맞이했던 자리로
도 유명하다. 서울시는 박대통령이 총탄을 맞았던 자리에 길이 30m, 높
이 3m의 성곽모양으로 된 돌담을 쌓았다.
10.26이전 이곳에 근무했던 한 경호원은 "유명한 여성연예인치고 궁
정동 안가에 안 온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곳은 지난 70년대초 민가이던 곳을 안기부가 하나씩 사들여 새롭게
개조해 사용해 왔다.
3공시절엔 중앙정보부가 관리해 왔고 10.26사건이 일어난 후 5공때부
터는 대통령 경호실이 관리해 왔다.
이곳을 오랫동안 지켜본 한 인사는 "3공때는 주로 정치공작성 회동과
연회가 많이 열렸고 5공때는 중요 시국사건이 발생할 경우 대책회의장
소로 많이 활용됐다. 그러나 노태우정부 때는 거의 사요오디지 않은 것
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대통령이 은밀한 사람을 만날때는 물론 안기부장과 경호
실장의 만남도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며 "2~명이 만난 경우가 제일
많았고 많을 때는 50여명도 모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인사는 "대통령을 위한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여자가 두세사
람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여러사람을 시중하기 이해 단체로
여자들이 불려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부터 줄곧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해 오고 있는 한 경호실 간부는
"경호실로서는 대통령이 안에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밤에 이루어지는 행사가 많은데다 적당한 경호장소도 없어서
겨울 같은 때는 추위에 떨며 지켜 서 있느라 경호원들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