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빠져있던 일본의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하던데요. 경제가 좀
나아지고 있습니까.

<>산본고문=재고조정이 상당히 진전됐다든가 주택건설이 늘고있다는 점은
분명한 "바닥탈출"의 조짐으로 볼수 있지요. 그러나 자동차 가전등
내구소비재부문은 여전히 부진합니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입니다만 경기회복국면까지 왜 이렇게 장기간의
진통이 따르는 겁니까.

과투자가 회복늦춰
<>산본고문=과거와는 달리 "성인병"을 앓고있는 징후가 뚜렷하기
때문이지요. 적어도 일본경제는 그렇습니다만.

-성인병도 성인병 나름일텐데요.

<>산본고문=이번 성인병은 비만증 당뇨 동맥경화증을 꼽을수 있습니다.
비만증에 걸린 것은 일본의 소비량이 연간 GNP(국민총생산)의 60%로까지
늘어나면서 신규소비수요가 한계에 부닥쳐있다는 얘깁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전체소비가운데 30%정도가 신규제품에 몰렸었는데
요즘엔 이 비율이 10%선으로 내려앉았습니다. 경기주도제품이
나타나지않아 "비만증"이 심해진 겁니다.

-투자측면에서도 그렇게 진단할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양중시경영을 했지않습니까. 그러다보니 과잉투자 과다설비를
했고..

<>산본고문=그렇습니다. 일본기업들은 지난 몇년간 GNP의 20%수준이면
충분한 설비투자를 40%선까지 끌어올리는등 과잉투자를 해 비만의 도를 더
높인게 사실입니다. 그 "비곗덩어리"를 제거하는 기간이 길어져 새로운
설비투자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겁니다.

-또 다른 증상은 뭡니까.

<>산본고문=당뇨병이지요. 이 병은 기업들이 경박단소형 제품생산에
치중하고 다품종소량생산체제를 너무 서두르는등 "미식"현상을 보이면서
생긴겁니다. 동맥경화증도 무시할수 없습니다. 땅값 주식값이 폭락하는등
이른바 거품이 꺼지면서 기업들은 심한 자금압박을 겪고 있습니다. "돈의
혈행장해"에 빠져있다는 뜻입니다.

-성인병,그것도 3가지씩이나 복합증세를 보이고 있다면 일본의 경기는
앞으로 희망이 없다는 말입니까.

<>산본고문=그렇지는 않습니다. 다행히도 이같은 성인병증상은 아주
초기증세입니다.

-일본이 장기불황에 빠져있다지만 무역수지에선 오히려 흑자폭이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비만증으로 일본국내수요이상으로 생산된
"비곗덩어리"를 해외로 배출한 때문이 아닌지요. 또 당뇨병에 걸려
식사량을 줄이다보니 자연히 해외로부터 수입도 안되고.

<>산본고문=글쎄요. 과거 완제품수출이 주종을 이뤘을 때는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요즘 일본이 거두는 흑자의 대부분은 부품류 수출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동남아에서 가전산업이 발전하고 미국의
컴퓨터산업이 호황을 보이면 일본산부품의 구매를 늘리는 식이지요.
요컨대 일본은 "꼭 팔고싶어서 파는 것"이 아닙니다. "구매자들이
일본산을 원하기 때문에"수출이 늘어나고 흑자가 커진다는 논리도
가능합니다.

-일본경제가 그만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군요.
불황이다,성인병이다 하지만 사실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든 장본인은
기업이 아니겠습니까. 통산성은 그 기업을 "일본주식회사"로 묶어
이끌어왔고 지금도 이끌어가고 있다는게 정설인데요.

<>산본고문="일본주식회사"라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엔 통산성도
전성기였지요. 그러나 요즘은 다릅니다. 일본주식회사란 용어자체도
생경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만큼 일본산업이나 기업들의 개별적
파워가 세졌다는 뜻이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 국외에서 보면 통산성은 여전히 막강하기만
합니다. 모르긴 해도 한국의 상공자원부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행정지도라고는 하나 통산성이 한마디하면 일본기업들이 군말없이 따라가는
식인데 그처럼 기업들을 "장악"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산본고문=통산성의 힘이 약화됐다고 해서 업계에 대한 리더십자체가
약화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리더십을 발휘할수 있는건 산업이 가는
방향에 따라 비전을 앞서 만들어간다는데 있지요. 비전을 만드는 것은
통산성이 아니면 안된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민간기업들과 함께
상의하고 의논하는 과정을 거쳐 작성되기 때문에 기업들로선 통산성의
"지도"를 거부할 명분과 이유가 없는 거죠.

정부임무,비전제시
-민관협조를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일본의 산업사를 보면 통산성은
전통적으로 자율조정론에 반대해온걸로 돼 있습니다. 업계의
이해관계때문에 자율조정이 어렵다는게 통산성의 논리였죠. 그러나
민관협조도 협조나름 아니겠습니까. 혼다기연이 자동차산업에
진출하려할때 통산성이 보인 불가입장도 과연 민관협조론에 근거한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산본고문=그건 꽤 오래전 일입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혼다그룹이
자동차분야에 진출하지 않았습니까. 통산성은 "지도"는 할수 있지만
"안돼"하는 식의 "강제"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랬기때문인지 지금
일본에선 자동차회사가 10개나 돼버렸지요.

-자동차업종에서 보듯이 일본의 기업들은 원래 다각화전략을 펴는데
귀신들 아닙니까. 한국에선 지금 업종다각화냐,전문화냐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업종전문화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같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업종전문화에 힘써 온
구미기업이 다각화에 힘써 온 일본기업에 녹아난 예도 있는데 왜 굳이
전문화냐는 것이지요. 경제력집중등의 다른 요인을 제외하고 순수한
경쟁력차원에서 보면 어느쪽이 맞는다고 보십니까.

<>산본고문=미쓰비시 스미토모등 일본의 기업군은 화학 자동차 전자 기계
섬유등 거의 대부분업종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원세트(one-
set)화돼있을 정도로 다각화시켜 놨다는 얘깁니다.

그렇지만 일본의 경우는 예컨대 스미토모계라고 해도 물건을 사고 팔때는
같은계열이라는것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다른 기업들에서라도 더싸고 좋은
물건이 있으면 사온다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이것이 일본의 기업집단을
스스로 지켜온 내부적 힘이된 셈입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다각화를 통한
원세트주의를 하지말라,곧 업종전문화를 하라는 식의 외부간섭이
없었습니다.

-소위 불공정 내부거래를 하지않았다는 말씀인데.정부부처간에는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특정 산업정책을 둘러싸고 통산성 대장성
공정거래위원회가 대립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자율론보다 협조를
<>산본고문=서로 하는 일이 다르지 않습니까. 일종의 견제와 균형(check
balance)관계에 있다고나 할까요. 통산성과 공정거래위의 관계에있어
재미있는것은 독점금지법의 존재입니다. 만약에 공정거래위가 관장하는
독금법이 없었다면 대기업들이 모여 시장지배"음모"를 꾸밀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 법의 존재로 통산성의 위상은 더높아졌지요.
기업과 공정거래위간의 교량역할을 하게됐다는 얘깁니다.

-업계와 타부처간 거중조정보다는 통산성하면 역시 정책아니겠습니까.
산업정책도 여러가지가 있지요. 산업구조정책 조직정책 금융정책 입지정책
기술정책등.. 이중에서 통산성이 앞으로 가장 중요시할 정책은
어느것이라고 봅니까.

<>산본고문=기술입니다. 통산성은 지금 기술개발문제를 적극적으로
태클하고있습니다. 일본사회가 당면한 고령화라든가,환경문제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길은 기술개발밖에 없다고 보는것이지요. 더구나
여기엔 시간과 대규모자금이 필요하기때문에 나라가 돈을 모아서 그 일을
떠맡을 수밖에 없지요.

-구체적인 계획이나 아니면 청사진이라도 내놓은게 있습니까.

<>산본고문=지난5월 새로운 산업정책의 캐치프레이즈를 "창조적혁신"으로
내걸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일본경제의 성인병증세나 기술개발과제등에
대처하기 위해선 "기존방식과는 확연히 다른"창조적 혁신이 시급하다는
상황인식에 따른 것입니다.

-기술개발에 관한한 일본은 지금까지 기초과학기술은 애써 외면해왔지
않습니까. 산업현장에 곧바로 응용할 수있는 생산기술개발에 주력해왔고
그 결과 오늘날의 경제력을 일궈낼수 있었다는게 일반적 평가입니다.
구미에서 개발한 기초기술을 이용해왔다는 점에서 일종의
"기술무임승차"라는 비난도 받고 있는게 사실이지요.

<>산본고문=그걸 부인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됐느냐하는 배경을
설명드리도록 하죠. 구미에선 총연구개발(R&D)비중중 5할가량을 정부가
부담해온데 비해 일본에선 정부부담비율이 1할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9할을 민간기업들이 떠맡아왔습니다. 기술개발의 주체가
기업들이다보니 당장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응용기술개발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공공재성격이 짙은 기초과학기술은 구미선진국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 상황인가요.

<>산본고문=아닙니다. 통산성의 주력정책이 "산업"에서 "기술"로
옮겨간다는 것은 일본도 이젠 기초기술쪽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입니다.
성숙단계에 이른 일본의 산업구조로 봐도 더이상 응용기술만으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대할수 없지요.

-그래서 통산성은 기술개발을 어떻게 추진한다는 겁니까.

<>산본고문=무엇보다도 미래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그에 맞춘 기초기술개발에 역점을 둘 것입니다.
통산성이 최근 전기 전자 컴퓨터 기계등을 합친 물질공학연구소,농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등을 망라한 생명공학연구소등을 산하기구로 발족시킨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될겁니다.

-산하연구소를 그렇게 개편했다면 기술의 시너지(복합상승)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기술융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아도 되겠군요.
어쨌든 선생께선 2000년쯤 각광을 받을 미래유망기술은 어떤것이 될것으로
봅니까.

<>산본고문=글쎄요. 통산성이 지난4월 산하의 공업기술원을 통해
뽑아본게 있기는 합니다만. 2000년까진 멀티미디어 공간과학엔지니어링
재택의료 전기자동차 재생산업(recycle) 신전원기술등 6개분야가
꼽혔습니다. 2000년이후엔 고온초전도체 마이크로머신 유전자조작기술
원자기술 인공지능 카오스(Chaos)이론등이 유망할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제목만으론 선뜻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한국경제신문 독자들을 위해 쉽게 설명해주시죠.

<>산본고문=예컨대 마이크로머신은 아주 미세한 기계로 혈액속에 들어가
동맥경화증이라든가 내장속의 암까지도 고칠수있는 획기적인 장치가 될
것입니다.

원자기술이란 물질의 기본구조를 이루고 있는 세포,즉 원자를 마음대로
움직일수 있는 기술을 뜻합니다. 이 기술이 실용화된다면 철강산업의 경우
굳이 모터를 돌려 작업할 필요가 없이 원자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마음대로 철판을 구부리거나 휘게해 원하는 모양을 만들수 있게
될것입니다.

카오스이론은 일기 지진 태풍등에 따른 모든 천재를 예방할수 있는 기술적
장치를 의미합니다. 통산성에선 이미 마이크로머신등에 대해 개념설계등
기술개발준비단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근래의 일본사람들은 "슘페터교의 광신도"라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일본이
지향하는 "창조적혁신"(Creative Innovation)의 뜻이 더 분명해지는군요.

대소기업간 조화를
<>산본고문=글쎄올시다. 슘페터교라고 할것까지는.. 어쨌든 요즘
일본에선 슘페터를 다시 보는 추세인것만은 사실입니다. 창조적 혁신하면
슘페터고 따라서 불황의 돌파구로서 그의 이론이 새롭게 와닿기
때문이지요.

-어떻습니까. 한국은 그점에서 부족한 것은 아닌지요.

<>산본고문=한국뿐만 아니라 어느나라에 대해서도 창조적 혁신이나
기술개발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굳이 한국에 대해서
말씀드린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엔 조화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조화를
이루려면 중소기업들을 부품생산에 특화하고 대기업은 이를 모아서
조립하는 방식에 철저해야 합니다. 미국의 GM은 지금까지 소요되는
자동차부품의 8할을 직접 생산해왔습니다. 엄청나게 비효율적이었지요.
일본의 경우는 2할정도만을 대기업들이 직접 만들고 나머지는 전부
중소기업들 것을 갖다 쓰고있습니다. 한국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리=이학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