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열림세무정보. 국내 정보가공업자들에게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다.

부러울정도로 영업실적을 올렸다거나 이렇다할 신기술을 개발해낸 회사도
아니다.

세무에 관한 정보를 가공해 팔아보려고 발버둥치다 창업3년만에
도산해버린 흔하디 흔한 중소기업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보산업계 사람들은 한국의 척박한 정보산업환경을 얘기할
때마다 이회사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사람으로치면 죽은 뒤에 오히려
유명해진 턱이라고나 할까.

열림세무정보는 모범적인 중소 DB(데이터베이스)업체였다. 출범하기 앞서
2년동안이나 방대한 자료를 축적하고 20여억원을 들여 DB를 구축했다.
개업후에는 고객을 1대1로 가르치며 영업하는 성실한 자세로 일관했다.
그러나 영업시작 3년만인 지난92년 문을 닫고 말았다. 도산이유는
자금압박. 지금은 다른 사업자의 손에 넘겨져 이름만 남아있는 상태라고도
들린다. 정보서비스업자들은 열림의 좌절이 예정된 결과였다고 말한다.
시장이 제대로 형성돼있지도 않은데다 DB구축을 위한 정보에 접근조차 안될
뿐더러 정부의 제도적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투자를 한것은
자살행위였다는 것이다.

국내 DB이용자수는 30만을 웃돌고 시장규모도 급성장을 거듭해 연간
600억원을 넘는다. 외형적으로는 작지않은 규모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정보이용자가 학생층으로 우리 DB시장은 아직
놀이방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때문에 자료를 분석
가공해 고급상품을 만들어 팔아야하는 세무 기업 금융등의
정보서비스분야는 취약할수 밖에 없다. 과학기술산업정보분야는 말할것도
없다. 생활 오락쪽으로만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가 공급되고 있다.

업자들은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고급정보상품은 아예 만들 생각을
하지않는다. 그래서 고급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용자들은 얻을만한 정보가
없다고 불평이다.

정보가공업자들이 겪는 또다른 어려움은 "정보는 공짜"라는 인식이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다는 점이다. 정보를 돈주고 산다는데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요금회수기간이 길고
사용자중 20~30%는 돈을 내지않아 서비스회사들은 자금압박에 시달리기
일쑤다. 이 사회가 아직도 정보의 가치를 몰라 국내정보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정책등 고급정보에서 부터 행사계획등 단순정보까지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정보비밀주의도 정보산업의 걸림돌이 되고있다. 원천정보에
대한 접근이 안되니 자연히 분석가공된 체계적 정보를 제공할수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속에서 좋은 기술이 개발될리가 없다.
이에반해 선진국의 정보산업체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신상품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변변한 연구기관 하나없는 국내실정으로는 선진국의
정보가공기술을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외 기업들에 과학기술정보를 공급하는 전문기관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는 산업기술정보원의 경우만해도 그렇다. 연간 정보매출액은 30억원이나
되지만 그중 외국으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은 고작1,500만원. 반대로 외국의
과학기술정보를 사오는데 들어가는 돈은 15억원에 이른다. 대외수지면에서
100배의 적자를 보고있는 셈이다.

국내 정보가공업자들은 DB구축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의 90%이상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뿐만아니라 부가가치통신망(VAN)사업자들도
과학기술이나 산업분야등의 고급정보는 거의 외국상품을 그대로 들여다
파는 판매대행업자노릇에 만족하고 있다.

국내정보가공업자들은 정보통신사업의 핵이라는 DB분야를 사업영역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돈벌 생각을 하지못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언젠가 정보산업이 활성화될 때까지 버텨본다는 막연한 기대만을 안고
대부분 부업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보가공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면 교환할 정보가 없어 정보화사회란 말은 껍데기만 남는
셈이다. DB기술이 따라가주지 못하면 정보화사회가 진전될수록 정보의
대외종속만 심화될 뿐이다. 국내정보가공산업 진흥을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