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머니가 시장에 가실 채비를 하면 만사 제쳐 놓고 따라나섰다. 같이 가자고 한 적도 없는데 어느새 장바구니까지 챙겨 들고 현관에 서 있는 아들 모습에 어머니는 ‘네 속셈을 다 안다’는 듯 웃곤 하셨다. 시장에 따라가면 얻어먹을 수 있는 군것질거리 중 최고는 반찬용인 사각형 ‘덴푸라’였다.생선 살과 밀가루 등을 배합해 만드는 어묵을 예전엔 덴푸라, 오뎅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덴푸라는 야채, 해산물 등에 튀김옷을 입혀 튀긴 일본 요리다. 오뎅 역시 가마보코와 무, 곤약 등을 국물에 끓여 낸 요리를 말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가마보코가 어묵에 해당하니 덴푸라, 오뎅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었던 셈이다. 해방 후 한글학회에서 ‘생선묵’으로 부르자고 제안했지만 널리 통용되지 못했고 1992년이 돼서야 ‘어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한·중·일 모두 즐기는 어묵은 역사가 긴 음식이다. 중국에선 위완(魚丸)이라고 부르는데 생선을 좋아한 진시황을 위해 가시를 뺀 음식을 만들어 진상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본에선 헤이안 시대인 1115년 한 권력자의 이사 축하연에 나왔다는 것이 첫 등장 기록이다. 우리의 경우 조선 숙종이 진연(왕실 잔치)에 오른 ‘생선숙편’에 반해 모든 음식상에 빼놓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고 전해진다.수라상에나 오르던 어묵이 6·25 이후엔 때론 반찬으로, 때론 술안주로 서민들의 배를 채워준 고마운 음식이 됐다. 그동안 많은 업체가 명멸했고 지금은 100여 곳이 어묵을 공급하고 있다. 그중 절반 정도가 부산에 있는데 가장 오래된 기업인 삼진식품이 ‘부산 어묵의 원조’ 격이다. 그런 삼진식품이 인도네시
정부가 총 26조원 규모의 ‘반도체산업 종합지원 프로그램’을 어제 내놨다. 26조원은 산업은행의 저리 대출 17조원, 반도체 생태계 펀드 1조1000억원+α, 인프라 확충 2조5000억원+α, 연구개발(R&D) 및 인력 양성 등에 5조원 이상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올해로 끝날 예정인 세액공제 적용 기한을 연장하고 R&D 세액공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반도체 지원 규모는 당초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조원+α를 거론한 바 있는데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관련 회의를 주재하며 2배 이상 커졌다. 업계에서 요청한 직접 보조금은 이번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조금을 지급하면 경쟁국들로부터 불공정 무역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법적 근거도 빈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야당의 ‘부자 감세’ 공격도 적잖은 걸림돌이다.아쉬운 측면은 있지만 정부가 비교적 큰 폭으로 입체적 지원에 나섰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중에서도 산업은행이 처음으로 대규모 금융 지원에 나서기로 한 것은 정부 차원의 반도체산업 육성 의지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미국 정부의 종합 패키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지으면 보조금, 세액공제, 금융 지원 등을 모두 제공한다. 인텔은 보조금 85억달러 외에 110억달러의 금융 지원을 받기로 했다.하지만 현장에선 금전적 지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 정부는 업계 및 전문가들과 자주 만나 글로벌 산업의 판도 변화와 기술적 흐름을 청취하면서 다른 나라 기업들이 ‘정경일체화’로 움직이는 양상을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전문인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무리수와 폭주가 끝이 없다. 그제 당선인 워크숍에서 22대 국회 개원 즉시 중점 추진하기로 한 56개 법안을 보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거나 삼권 분립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반시장적, 위헌적인 것들이 나열돼 있다.민주당이 2022년 발의했다가 독립성 훼손이라고 비판받은 감사원법 개정안 처리에 다시 시동을 거는 것부터 입법 보복 냄새가 짙다.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들을 보면 감사원이 특별감찰할 때 계획서를 사전에 국회 소관 상임위에 제출해 승인을 얻도록 했다. 비공개 감사, 직무감찰 결과도 국회에 보고토록 하고, 감사 결과의 대통령 보고 절차는 폐지했다. 입법 당시 탈원전, 통계 조작 등 문재인 정부의 의혹에 대한 감사를 틀어막기 위한 ‘감사완박(감사원 권한 완전 박탈)’ 법안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앞으로도 감사원을 국회 통제 아래 두고 민주당 정권에 불리한 감사를 방해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대통령 소속이나 직무상 독립된 헌법기관인 감사원을 거대 의석을 무기로 좌지우지하려는 발상이 개탄스럽다. 윤석열 정부 이후 입법·사법·행정부 간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리려는 민주당의 시도는 끝이 없다.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 운운하고, 대통령 고유 권한인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임명권 제한, 국회의 예산 편성권을 주장하는 ‘예산완박’, 정부의 시행령 수정권을 박탈하는 ‘정부완박’까지 추진했다. 국무위원 21명 가운데 7명을 탄핵하거나 겁박하더니 당 지도부가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고, 장관·검사 탄핵권 적극 활용 방침도 내놨다. 헌법과 법적 안정성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