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중은행주총도 예외없이 은행장인사를 둘러싼 갖가지
잡음에 휩싸여 볼썽사납게 끝났다.
행장자리를 놓고 경쟁자들이 벌인 로비가 어땠다느니,정부고위층이 누굴
밀었다느니하는등의 확인되지않은 소문으로 얼룩져 씁쓰레한 뒷맛을
남겼다.
이번만은 자율적인 인사관행이 싹트길 기대했던 금융계는
상업은행장선임과정에서 빚어졌던 신구행장간의 뒤집기를 보면서 또한번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행장자리를 내놓은 이현기 상업은행 회장은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고 주장하나 불과 며칠전 유임이 확정적이었다는
유력한 소식통들의 말을 감안할때 그의 결정에 외압이 작용했을것이라는게
공통된 시각이다.
누군지는 알수없지만 "보이지않는 손"이 행장인사를 원격조종했다는 설을
믿는 분위기다.
은행인사자율화는 정부스스로 줄곧 강조해온 사항이다. 역대재무장관들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은행도 주식회사인만큼 정부가 인사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외쳐왔다.
금융계는 인사자율에 관한 정부의 공언이 금융자율화가 시급한 작금의
상황에서 꼭 실현되길 바랐었다. 인사권이 독립되지않고는 경영자율성이
보장되길 기대할수없고 금융자율화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행장인사를 주주들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것이 반드시 바람직한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없지 않다. 우리나라시중은행들은 대부분 대기업들이
주요주주군을 이루고있어 이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은행을 하나씩 맡아
행장선임에서 부터 자금집행까지를 좌우할수도 있다. 그럴경우 은행은
기업의 사금고로 전락,은행의 속성인 공공성을 저버릴수있기때문에 우리의
현실에선 주주들에게 완전히 행장선임을 맡겨선 안된다는 주장이 적지않다.
문제는 그러한 주장이 정부에서 행장을 직접 골라주는 방식을 택할수밖에
없다는 빌미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정부의 입김을 쐰 행장은
소신에 따른 경영보다는 눈치보기에 급급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정부가 인사에 개입하지않겠다는 말이라도 하지않았으면 좋겠다"
한 금융인의 이같은 자조섞인 탄식을 잠재우기위해서라도 자율성과
공공성이 동시에 보장될수있는 행장선임풍토를 하루빨리 마련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