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에서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자유를 찾아 작년 8월 귀순한
북한출신 청년이 27일 꿈에도 그리던 소련인 약혼녀및 그의 딸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김일성종합대 재학중 지난84년 2월 소련 유학생으로 선발돼 소련에
간후 작년 6월 우크라이나공화국 `하리꼬브 공업대학''수학역학부를
수석으로 졸업, 귀국문제를 놓고 고민하다 졸업한지 두달만인 8월 귀순한
김지일씨(27)의 소련인 약혼녀 왈랴 양 (26.소련 우크라이나공화국
하리꼬브시 고등중학교 교사 - 본명:보주꼬 왈렌찌나 아나똘리예브)이
27일 상오 9시50분 대한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 김씨와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김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연아양(2)과 함께 26일 모스크바를
출발, 난생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은 왈랴양은 약혼자와 기약도 없이
헤어진지 10개월만에 다시만나게 된것이 믿기지 않는듯 마중나온 김씨를
껴안고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우리정부와 주소한국대사관 직원들의 수차에 걸친 소련당국 접촉과
설득이 결실을 맺어 방한의 꿈을 실현한 왈랴양은 앞으로 약 2주동안
한국에 머무른후 소련으로 돌아가 김씨와 한국에서 보금자리를 꾸미는데
필요한 수속을 밟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헬기 조종사를 지낸 아버지(51)와 대학출판사 교정원인
어머니(48)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중 장녀인 왈랴양이 김씨와 처음 만난
것은 자신이 `하리꼬브종합대'' 어문학부 러시아문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84년 8월.
왈랴양은 이곳 하리꼬브 공대에 유학온 김씨를 우연히 만나자마자
김씨의 순수성에 끌려 곧 사랑하는 사이가 됐으나 그후 국적이 다른
미지인과의 교제를 반대하는 부모의 완고함과 `사상적 동요를 초래할 수
있는 외국인과의 교제금지 방침''에 따라 이를 막는 북한대사관 유학생
조직책임자의 "강제귀국" 위협에도 불구하고 애정관계를 지속하다가 88년
11월 부모를 설복시키는데 성공, 김씨와 약혼을 하고 다음해 9월에는 딸
연아양까지 출산했다.
88년 9월 하리꼬브 대학(6년제)을 졸업한후 현지에서 고등중학교
교사로 취업한 왈랴양은 김씨와 동거중 지난해 6월 하리꼬브 공대
수학역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김씨가 북한당국의 `소련유학생 무조건
철수결정''소식과 동유럽사회주의국가의 잇단 붕괴및 민주화에 지극을
받아 작년 8월 동료 유학생 정현과 함께 자유를 찾아 서울행을 결행하자
홀로 딸을 키우며 생이별의 아픔을 달래왔다.
김씨는 귀순후 소련에 두고온 약혼녀와 딸을 잊지못해 그동안 5차례나
서신을 보냈으나 줄곧 답장을 받지못해 마음을 졸이던중 금년 1월
약혼녀로부터 딸의 사진이 동봉된 편지를 받고 우리 정부와 주소
한국대사관에 이들과의 상봉주선을 간곡히 호소하며 계속 `만남의 꿈''을
키워왔다.
왈랴양은 이때 보낸 편지에서 딸 연아양의 자라는 모습을 상세히
적은후 "당신도 이제는 남한과 외교관계가 수립됐다는 것을 알고
계시겠지요.(중략) 전 지금 아직은 이르기 때문에 해서는 안될 질문들을
하기가 두려워요.그러나 저에게는 이 인생에서 우리 셋이 함께 있기를
바라는것 외에 다른 그 무엇도 더 바라지 않는 것 같아요(중략) 여기서는
당신에게 경쟁자가 없어요"라며 김씨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정부당국은 김씨의 호소와 왈랴양의 애끓는 사연을 보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를 돕기로 결정,소련당국을 설득한 끝해 지난 13일 왈랴양에게
여권이 발급되도록 해줬으며 왕복항공권까지 발송, 국경과 체제를 초월한
두 연인의 재회가 이뤄지도록 `사랑의 가교''를 놓아 주었다.
고향이 평양(모란봉 구역 서흥1동 43반)인 김씨는 동력설계사업소
설계원인 아버지 김래익씨(54)와 철도방송위원회 편집원으로 있는
어머니(방명옥.51)사이에서 지난 64년 태어나 80년 평양 연화고등중학
(5년제)을 졸업하고 84년 2월 김일성종합대 기계역학과 3학년 1학기를
수료한 직후 소련 유학생으로 선발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