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지연 막을 '판사 증원' 또 물거품 되나

정쟁에 밀려 법안 폐기 위기

28일이 21대 마지막 본회의인데
'판사정원법' 법사위도 못 넘어

법조계 "민사 확정까지 1104일
법관 수 부족해 국민들만 피해"
판사 정원을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늘리는 ‘각급법원판사정원법’(판사정원법) 개정안이 여야 갈등으로 21대 국회에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심각한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번 국회 회기 내 처리가 절실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상황이 장기화하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침해와 기업 활동 위축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판사정원법은 다음날 열리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할 경우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이 법안은 여야 간 갈등으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아 국회 임기 종료가 코앞인데도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정부는 2022년 6월 판사 정원을 기존 3214명에서 3584명으로 5년간 순차적으로 370명 늘리는 내용의 판사정원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와 함께 검사 정원을 기존 2292명에서 206명 증원하는 ‘검사정원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판사와 검사 정원은 통상적으로 연동해서 늘린다.

이후 법관 수 부족에 따른 재판 지연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판사정원법 입법 논의에도 속도가 붙었다. 판사정원법과 검사정원법은 발의된 지 2년 만인 지난 7일 나란히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조계에선 2014년 이후 10년 만에 법관 증원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채상병 특검법’ 등을 둘러싸고 임기 막판까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본회의 전까지 법사위 전체회의 개최가 불투명해졌다. 여기에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다시 검사 증원에 반대하는 기류가 생기면서 판사정원법 처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민사합의사건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걸린 기간은 1104일로, 2017년(663일) 대비 무려 66.5%나 늘었다. 형사합의사건 역시 같은 기간 384일에서 456일로 18.8% 증가했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사건 접수량과 미제 사건 증가 속도에 비해 법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재판 지연에 따른 불편과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부터 법조 일원화 제도에 따라 판사 임용에 필요한 최소 법조 경력이 기존 5년에서 7년 이상으로 상향 조정되는 점도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5년 이상 7년 미만 법조 경력자를 제외하면 전체 신규 법관 임용 지원자 풀이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