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탈원전 '잃어버린 7년' 딛고…400조 'SMR 최강자'로 부활한 두산

美 뉴스케일파워에 2조원 규모 SMR 소재 납품

'그로기' 빠졌던 두산의 승부수
탈원전 위기에도 미래원전 눈돌려
두 차례 투자로 독점 공급권 따내
"전세계 SMR 파운드리 장악할 것"

AI가 연 'SMR 르네상스'
대형 원전 건설비의 10분의 1 불과
'전기먹는 하마' 데이터센터에 최적
상용화 앞두고 美·中 개발 경쟁도
두산에너빌리티 경남 창원 공장의 뉴스케일파워 전용 원자로 주조 설비에서 작업자들이 소형모듈원전(SMR) 주단 소재를 제조하고 있다. 주단 소재는 원자력 압력 용기를 구성하는 특수 금속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2019년 두산에너빌리티는 ‘침몰하는 항공모함’이었다. 대형 원자로를 34기나 제작한 ‘원전 강자’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신규 수주 물량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 건설이 백지화되고, 수출길도 막히자 2017년 100%이던 공장 가동률은 반토막이 났다. 이듬해 가동률이 10% 밑으로 떨어지자 한솥밥 먹던 식구 수백 명을 명예퇴직으로 내보내야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두산은 미래를 그렸다. “원전보다 작고 안전한 소형모듈원전(SMR)이라면 탈원전 풍파를 이겨낼 것”이란 판단에 적자에도 불구하고 SMR 분야 선두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이다. 그렇게 뉴스케일파워에 두 차례(2019년 4400만달러, 2021년 6000만달러) 투자하고 핵심 부품 공급권을 확보했다.가능성에 투자한 두산의 ‘선구안’은 5년 뒤 현실이 됐다. 뉴스케일파워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SMR 영토를 넓히면서 두산에도 일감이 밀려들고 있어서다.

SMR 시장 선점 나선 두산

미국 오리건주 코밸리스에 설치된 뉴스케일파워의 SMR 실물 크기 모형. 뉴스케일파워 제공
두산이 SMR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7년 전이다. SMR이 미래 먹거리가 될지, 어떤 업체가 가장 잘하는지 살펴보는 데 약 3년을 보냈다. 그렇게 찾은 회사가 뉴스케일파워였다. 그 회사 원자로를 두산이 제작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도 3년가량이 걸렸다. 두 차례 투자를 통해 SMR 주기기의 독점 제작·공급권을 확보했다.

요즘은 시설 투자에 ‘올인’하고 있다. 높이 23m짜리 원자로를 압축한 모듈형 압력용기(RPV)의 상부 구조물을 제작한 데 이어 뉴스케일 원자로 전용 금속 소재 제조에 들어갔다. SMR 6기 분량의 단조품과 증기 발생기, 연료봉을 담는 튜브 등 핵심 부품 생산에도 착수했다. 시설 투자에 533억원을 들인 데 이어 3000억원을 투입해 공장도 증축한다.

업계 관계자는 “SMR이 상용화하면 두산이 세계에서 가장 큰 파운드리(수탁생산업체)가 될 것”이라며 “뉴스케일 물량 수주로 남들이 넘보기 힘든 ‘트랙 레코드’를 쌓게 됐다”고 말했다.SMR에 눈독을 들이는 건 두산뿐만이 아니다. HD한국조선해양은 SMR을 바다에 띄우는 해상부유식 원자력발전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테라파워에 3000만달러(약 500억원)를 투자했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SMR 개발사와 손을 잡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30년을 목표로 한국형 SMR을 개발 중이다.

400조원 SMR 시장 열린다

SMR은 에너지산업의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대형 원전보다 훨씬 안전하고 건설비는 10분의 1에 불과해서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공지능(AI)용 데이터센터 바로 옆에 설치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이번에 뉴스케일과 스탠더드파워가 맺은 50조원 계약도 데이터센터와 SMR을 함께 짓는 프로젝트다.

전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세계에 SMR 개발 열풍이 불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뉴스케일 SMR 사업을 위해 올해 112억달러 지원 예산을 새로 편성했다. 중국은 지난 22일 세계 최초로 상업용 SMR인 ‘링룽 1호’를 준공하고 시험 가동에 들어갔다. SMR 시장은 급격히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아이디테크엑스는 SMR 시장이 2033년 724억달러(약 98조원)로 성장한 뒤 2043년에는 2950억달러(약 401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오현우/김우섭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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