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스라엘 선봉' 이란 2인자 사망…가자 휴전 협상 안갯속

이란 공식발표…권력 공백에 정치적 혼란 커질 듯

"외무장관 등 탑승자 전원 사망
헬기 추락 사고 원인은 악천후"

초강경 보수파 라이시 대통령
반정부 시위대 잇단 유혈진압
'테헤란의 도살자'로 불리기도

중동 '저항의 축' 지원해온 이란
하메네이 후계구도 변동에 촉각
‘이란 2인자’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면서 국제 사회에서는 중동 정세 불안이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 유고에 따른 혼란이 이란 내 권력 투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통령 사망 공식 확인

20일 AFP통신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이날 성명에서 자국 대통령이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란 통신사 메흐르는 라이시 대통령과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 등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며 “라이시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의무를 수행하던 중 사고로 순교했다”고 보도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전날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州)에서 열린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한 뒤 타브리즈의 정유공장으로 이동하다 디즈마르 산악 지대에서 변을 당했다. 헬기에 동승한 아미르압돌라히안 장관, 타브리즈 지역 성직자인 금요 기도회의 이맘 아야톨라 알 하솀, 말리크 라흐마티 동아제르바이잔주지사 등 8명도 함께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란 국영TV를 비롯해 현지 언론들은 비와 안개 등 악천후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 추락한 헬기는 50년 이상 운용된 미국산 노후 기종으로 추정된다.

초강경 보수 성향인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의 종교 수도인 마슈하드 출신으로 10대 때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현 최고지도자(85·국가원수)로부터 신학을 배웠다. 고령인 하메네이 뒤를 이을 후계자로 여겨졌다. 1981년 스무 살부터 검사 생활을 하며 반체제 인사 숙청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2009년에는 대통령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녹색운동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테헤란의 도살자’라는 별명도 이때 붙었다. 2022년 ‘히잡 시위’에서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고, 지난달 13일에는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이 피폭당한 것의 보복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사상 처음으로 공격하는 등 초강경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후계 구도는 어떻게

라이시 대통령은 그 스스로의 정치적 기반이 있었다기보다는 하메네이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했다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하메네이가 원하는 것은 라이시 대통령과 같이 자신의 뜻을 충실히 이어받을 2인자다. 이코노미스트는 “라이시 대통령의 죽음이 이란 정치를 뒤흔들어 놓을 것은 명백하다”며 “이란 지도부는 어려운 시기에 빠르게 차기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란의 임시 지도자는 하메네이의 권력 기반이자 비밀 기업 조직인 ‘세타드’ 수장을 지낸 모하마드 모흐베르 이란 수석부통령이 맡을 예정이다. 이란 헌법은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의회의장, 사법부 수장과 함께 50일 이내에 새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란 대선은 올 7월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하메네이는 둘째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에게 정치적 실권을 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가 실제로 이 자리를 세습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세습을 원치 않는 다른 성직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임 하산 로하니 대통령처럼 온건파 대통령이 다시 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중동 불안 우려 커져

지난 3년간 시아파 맹주 이란의 초강경 이슬람 원리주의 노선을 이끌어온 라이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중동 지역 정세는 한층 불안정해질 전망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 과정에서 이란은 하마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이른바 ‘저항의 축’을 지원해왔다.

이란 내부에서 정치적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AP통신은 “이란은 경제 및 여성 인권 문제로 시아파 신정주의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며 “이란의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은 매우 민감한 순간”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한 게 아닌 이상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망 보도 직후 치솟았던 유가는 다시 안정세를 되찾았다. 미국 중부시간 기준 20일 한때 배럴당 80달러를 넘겼던 6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은 전 거래일 대비 0.57% 내린 79.60달러에 거래됐다. 7월물 브렌트유 선물은 0.42% 하락한 배럴당 83.56달러에 거래됐다.

한경제/이상은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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