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유예' 급물살 탔지만…민주 강경파가 의총서 걷어찼다

법 개정안 폐기 수순

野 유예 조건이던 산업안전청
與가 전격 수용했는데도 거부

尹 "83만 중소기업 절규 외면
野, 민생보다 정략적 선택한 것"
< 무기력한 여당 > 윤재옥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1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요구를 끝내 외면하면서 관련 법 개정안은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4월 총선 후 새롭게 구성되는 22대 국회에서 여당이 유예를 다시 추진한다고 해도 적어도 수개월이 소요돼 적용 유예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이 83만여 개 영세·중소기업의 절규를 외면한 채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행하면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 노총 눈치를 본다고 민생 현장을 외면했다”(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이 유예의 핵심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여당이 수용했는데도 합의를 거부한 것을 두고 “애초에 유예할 생각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안청 수용’에도 외면한 野

정치권에선 1일 오전까지만 해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개정안이 오후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민주당이 유예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해 온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여당이 전격 수용하기로 하면서다. 정부와 여당은 그동안 새로운 정부 부처 신설에 반대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영세·중소기업의 타격이 큰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야당 요구를 받아들였다.

다만 국민의힘은 산업안전보건청에서 단속·조사 업무를 축소하고 중대재해 사고 예방과 사후 지원에 초점을 맞춘 산업안전보건지원청을 설치하자고 민주당에 제안했다. 산업안전보건지원청 개청 시점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가 끝나는 2년 후로 제시했다.

홍익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원내 지도부도 국민의힘의 이 같은 제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도 “합의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간 홍 원내대표가 유예 조건으로 제시해 온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관철했기 때문에 더 이상 유예를 반대할 명분 또한 약했다.분위기가 반전된 건 본회의 직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다. 원내 지도부가 이 같은 여당 제안을 의총에서 보고했지만 “유예 요구를 수용하면 안 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산업계의 경영 환경을 고려해 적용 유예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강경론에 밀렸다.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취재진과 만나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법 시행과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맞바꾸진 않겠다는 것이 의총의 결론”이라고 했다. 표결은 하지 않았고, 15명의 찬반 토론을 지켜본 홍 원내대표가 여당 제안을 거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與 “국민이 민주당 심판할 것”

민주당 반대로 유예가 무산되자 윤석열 대통령은 “여당 원내대표가 민주당이 그동안 요구해온 산업안전보건청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거부한 것은 결국 민생보다 정략적으로 지지층 표심을 선택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83만 영세사업자들의 절박한 호소와 수백만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이토록 외면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비정함과 몰인정함을 국민이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여야 합의가 무산되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법 개정안은 폐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9일 민생 법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가 열리지만, 민주당이 의총에서 ‘산업안전보건청을 설치하더라도 유예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만큼 재논의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다. 윤 원내대표는 홍 원내대표와의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 “지금 만날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재영/정소람/양길성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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