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셀프연임은 도덕적 해이" vs "정부가 주인없는 기업 주인행세"

지배구조 문제 지적한 정부
금융지주·KT·포스코 등 겨냥
CEO 연임 잡음일자 문제 제기
'스튜어드십' 통한 투명성 강조
소유분산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연임 이슈를 둘러싼 논란으로 주요 금융지주사와 KT, 포스코 CEO들의 거취가 불투명해졌다.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KT 사옥 앞을 지나가고 있다. 허문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른바 소유분산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연임하는 문제에 관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하면서 정부 개입의 적정선에 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직접 기업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주요 금융지주회사와 KT, 포스코홀딩스 CEO 등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것이 산업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지난해 12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소유분산기업의 ‘셀프 연임’을 비판한 데 이어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관련 업계에서는 윤석열 정부식 ‘적폐 청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셀프 연임 누구 맘대로”

정부 관계자들은 ‘현직 경영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을 적용해서 임기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타당하냐’는 부분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왔다. 현 대표이사의 연임 여부를 우선 심사하도록 제도화한 KT 등을 지적한 것이다. 구현모 KT 대표는 작년 말 이로 인한 논란이 불거지자 경선을 자청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30일 “과거 정부 투자 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은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기업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하라는 취지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31일 “좀 더 나은 거버넌스를 통해서 더 높은 수익을 돌려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정 후보나 인사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부당하게 전리품 취급”

산업계는 정부가 구체적인 이유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막연하게 스튜어드십 등을 내세워 사실상 거취 표명을 압박하는 것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한 기업 고위 관계자는 “적폐 청산이란 명분을 내세워 자기 사람 심기에 나섰던 지난 정부와 다를 것이 뭐냐”며 “주인 없는 기업이라고 해서 정부가 전리품 취급하는 게 정당화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포스코는 2000년, KT는 2002년 민영화됐다. 정부가 직접 보유한 지분은 한 주도 없다. 주인 없는 기업에 정부가 주인 행세를 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연금을 통해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순 있지만, 그것도 엄밀하게는 국민연금의 독립적인 운영 취지에 어긋난다.

CEO가 ‘친위대’ 사외이사들을 통해 셀프 연임을 추진한다는 정부 측 인사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 기업 관계자는 “주주들이 이사회 구성에 이견이 있다면 주주제안 형태로 이사진을 변경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며 “주식 한 주도 없는 정부가 이사회 구성에 왈가왈부하는 게 맞느냐”고 지적했다.

경영 실적이 나빠서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구 대표는 재임 기간에 KT 주가가 두 배로 뛰어올랐고 인공지능(AI)·콘텐츠 투자 등으로 회사 체질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각사 지분을 보유한 외국 기관투자가들이 정부의 교체 신호에 동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2018년 문재인 정부는 KT&G 대주주이던 기업은행을 통해 당시 백복인 사장을 교체하려 했지만 외국인 주주들이 백 사장 연임에 찬성표를 던져 교체에 실패했다.

정치 외풍에 조직 ‘흔들’

각사 CEO들은 대외적으로 특별한 메시지를 내지 않은 채 경영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30일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마크 맥가윈 서호주 총리를 면담했다. 최근 주요 계열사 사장과 임원을 교체하는 등 그룹 인사도 단행했다. 구 대표도 지난주 몽골을 방문해 희토류 수입 등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고 몽골 정부로부터 최고디지털책임자(CTO) 직을 받는 등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조직 내부는 술렁이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 ‘CEO 잔혹사’의 기억이 선명한 탓이다.

이상은/김재후/좌동욱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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