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뜻은 달랐다는데…검찰 출신 금감원장에 대한 우려 큰 까닭 [이호기의 금융형통]

이복현 금감원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청사에서 취임사를 낭독하는 모습. 금감원 제공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7일 공식 취임했지만 여전히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검찰 출신 첫 금감원장이라는 상징성 때문인데요. 소위 "검사들이 다해먹는다"는 야권의 비판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이전에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으로 도배하지 않았느냐"고 날선 반박을 내놓으면서 논란에 기름을 붓기도 했지요.

물론 이 원장이 전문성 측면에서는 자격이 충분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금감원장으로 임명됐던 김기식 전 원장조차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 원장이) 공인회계사 자격이 있고, 관련 경제범죄 수사를 통해 법률적 지식과 역량을 갖춘 만큼 금감원장으로서 요건을 갖췄다"고 말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에선 이 원장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큰 게 사실입니다. 먼저 인선 과정에서 상당한 잡음이 일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등 경제·금융 관료들은 기존 관행대로 이병래 한국공인회계사회 부회장 등 기재부·금융위원회 출신 인사의 발탁을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행법상 금융위원장이 금감원장 임명 제청권을 쥐고 있는데다 뗄레야 뗄 수 없는 금융위·금감원 간 업무 연관성을 고려할 때 당연한 일입니다.
여의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는 이복현 금감원장.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의 뜻은 달랐습니다.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사모펀드 사태나 '대장동 게이트' 등 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대형 비리 사건의 진상이 아직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낱낱이 파헤치고 제대로 된 재발 방지책까지 마련하려면 기존 금융권과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고 역량이 입증된 검사 출신이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심중에는 일찌감치 '이복현 검사'가 내정돼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 이 원장의 검사 시절 경제범죄 수사 경력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자금,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 굵직한 경제·금융 범죄 사건을 도맡았지요. 금감원장 인사가 6·1지방선거의 종속변수였다는 소문도 무성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대권을 놓고 경쟁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선 이 의원이 대선에서 패배한 뒤 곧바로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게 '대장동 게이트' 수사의 칼날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적지 않았습니다. 즉 이 의원이 국회에 입성해 '방탄'을 장착하면 관련 수사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이런 난제를 해결하려면 금감원장에 유능한 검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지요.

금감원은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없이 금융회사로부터 각종 자료를 제출받을 권한을 갖고 있는데다 전문 조사 인력을 다수 확보하고 있어 예전부터 각종 경제범죄 수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조사 대상이 될 금융회사들의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잘못이 있다면 응당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이미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윤석헌 전 원장 때 강도 높은 검사·조사 등을 거쳐 관련 금융회사 및 임직원 제재까지 확정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이 원장은 취임 첫날 기자간담회에서 "일각에서 문제제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시스템으로 다시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점검해보겠다"고 재조사 의지를 밝혔지요. 현재 대외 환경도 그리 우호적인 편이 아닙니다. 올 들어 물가와 금리가 급등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고 이대로 가다간 국내 대기업이나 금융회사의 대규모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금융회사는 그 특성상 어느 한 곳의 위기가 다른 곳으로 빠른 속도로 전이되기 때문에 이를 중간에서 차단하기 위한 금감원의 리스크 관리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부장검사에서 퇴직한 이 원장이 아직 금감원에 비견할 만한 큰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이 없다는 것도 걱정스러운 대목입니다. 게다가 이 원장은 1972년생으로 연공서열 문화가 강한 금감원에서 임원(부원장보 이상)이나 실·국장은 고사하고 고작 부국장·팀장들과 비슷한 연배입니다.

이 원장은 취임 직후 각 부원장보(총 10명)를 중심으로 주요 현안에 대한 업무 보고를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윤 대통령의 신뢰를 성과로서 입증해야 할 책임과 부담감도 상당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원장이 부디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취임사에서 스스로 밝힌 '금융시장의 선진화와 안정 도모'에 역량을 집중해주길 기대해 봅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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