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래리 핑크 "인플레, 일시적 아니다" vs 파월 "일시적"

전날 치솟은 물가(6월 소비자물가지수 5.4%)와 저조한 30년물 국채 입찰에 놀랐던 뉴욕 증시의 투자자들은 14일(현지시간) 오후 12시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의회 증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슈퍼 비둘기' 파월이 다시 시장을 안정시켜주길 고대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투자자들의 귀를 먼저 사로잡은 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였습니다. 블랙록은 이날 아침 2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운용자산(AUM)이 전년 대비 30% 늘어난 9조5000억 달러에 달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조 바이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뒤 월가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핑크는 실적 발표 직후 CN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믿지 않는다. 물가 상승은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시스템화될 것이다. Fed와 다른 중앙은행들이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라고 밝혔습니다. 핑크의 인터뷰가 나갈 무렵인 오전 8시30분 발표된 미국의 6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 대비 1% 상승(전년 대비 7.3%)한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월가 예상치(0.6% 상승)보다 높았고 4월 0.6%, 5월 0.8%에 이어 물가 압력이 계속 커지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에너지와 음식 물가를 제외한 근원 PPI도 1.0% 상승했습니다.
핑크가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것으로 믿는 이유는 단순히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 병목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더 높은 물가에 대한 예측 근거로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좀 더 근본적이고 펀더멘털한 변화 두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① 소비에서 일자리로 변화하는 경제 정책핑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 정책은 소비에 바탕을 두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싼 제품을 제공하는 게 더 많은 미국인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그런 믿음에서 벗어났고 이제는 소비보다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해외로 옮겨간 제조업 등을 다시 미국으로 되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 싼 제품을 제공하는 중국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핑크는 ″그런 노력은 아마도 더 높은 체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② 탈 탄소화

핑크는 또 화석 연료에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도 물가 상승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는 "에너지 전환에서 수요 곡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공급에만 초점을 맞추면 에너지 가격이 상승할 것이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혹은 120달러가 된다면 그건 인플레이션을 부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유럽연합(EU)은 세계에서 처음 탄소국경세 제안을 공개했습니다. 역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기 위해 탄소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가 상품·서비스를 수출할 때 관세를 매기겠다는 겁니다. 즉 철강 시멘트 등 EU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해 역내에서 생산된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으면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관세를 때리는 것입니다. EU는 또 2035년부터 신규 휘발유·디젤 차량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방안도 제안했습니다. 이런 제안이 실행되면 모두 물가 상승을 부를 것입니다.

핑크는 "우리는 임금 인상과 그 밖의 모든 상승을 보게 될 것으로 믿는다. 미국은 내년에 3.5%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겪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블랙록은 모든 직원들의 임금을 8% 인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오전 8시30분에 파월 의장의 의회 사전 답변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파월 의장은 경제가 고용 및 인플레이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실질적 추가 진전'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밝혔습니다. 테이퍼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에 대해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앞으로 몇 달 동안 높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현재의 급등세는 일시적이고 상황이 정상화되면 낮아질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는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물가 목표치 2%와 대체로 일치한다"라며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넘어 실질적이고 지속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를 본다면 통화정책을 적절히 조정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파월 의장은 "채권매입 축소 논의는 계속할 것"이라며 "Fed 위원들이 자산매입 축소를 허락하는 경제 상황으로의 진전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파월 의장의 입장 표명은 투자자들의 안도를 끌어냈습니다. 보합권에 머물던 주요 지수 선물은 오전 9시30분 개장할 때 0.4~0.7%의 상당한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10년물 금리는 어제 저조했던 30년물 입찰 이전인 1.35% 수준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개장 전 웰스파고, 씨티, 델타항공 등의 2분기 실적 발표가 예상보다 좋았던 것도 투자 심리를 호전시켰습니다. 다만 기업 실적은 여전히 주가로 이어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CNBC에 따르면 이번주 14일 아침까지 실적을 공개한 12개 기업 모두 이익이 월가 예상치를 넘었지만, 주가는 평균적으로 0.56%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파월의 완화적 입장은 어제 CPI가 나온 뒤 이미 예견됐다"라며 "시장의 테이퍼링 발표 시점이 점점 뒤로 미뤄지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Fed가 조기에 테이퍼링에 나서려면 인플레이션이 치솟든지, 아니면 고용이 살아나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5월 CPI가 5.4%로 발표된 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란 분석이 더 힘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달보다 88bp(1bp=0.01%포인트)나 상승했는데 이 중 70bp가 중고차 가격 등 일시적 요인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중장기 인플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인 주거비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월세, 자가주거비(OER) 등으로 구성된 주거비는 CPI에서 3분의 1가량의 비중을 차지하는데, 지난달 0.32% 올라 전달 0.2%에 비해 오름폭이 커졌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주거비는 CPI에서는 30%가량 비중을 차지하지만, Fed가 주로 참고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에서는 20%가량으로 비중이 작아진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럼 고용 상황이 개선되어야 하는데, 9월 이전엔 많이 늘어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습니다. 연방정부가 주는 추가 실업급여가 9월 초 종료되고, 학교가 개학해야 사람들이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는 "파월로선 긴축을 미루는 데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 테이퍼링 일정이 발표될 시점에 대한 시장 예상이 8월 말 잭슨홀에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등으로 조금씩 늦춰지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10년물 금리가 다시 1.3%대로 낮아진 데 대해 "Fed가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해도 이렇게 연방부채가 많고 고용이 쉽게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몇 차례나 올릴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며 "최대 다섯 차례(1.25%포인트)가 최대라고 본다"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는 "이런 전망이 지금의 낮은 금리에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당분간 금리가 지금과 비슷한 선에서 유지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주 1.2%까지 떨어진 건 숏커버링 등 기술적 요인이 많았는데 이런 기술적 요인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이날 실제 증언에서도 사전 답변과 비슷한 어조를 이어갔습니다. 실제 파월 의장이 발언할 무렵에는 주가는 거의 보합권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 막판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다우는 0.13%, S&P 500 지수는 0.12% 상승했고 나스닥은 0.22%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습니다.

핑크 CEO뿐 아니라 이날 스티븐 므누신 전 재무장관도 CNBC에 나와 "인플레이션이 걱정된다. Fed가 당장 자산매입을 줄여야 한다"라고 주장했고, 전날 펩시콜라의 휴 존슨 최고재무책임자는 인플레이션 압박을 느끼고 있다며 조만간 제품 가격을 올리겠다고 말했습니다. 파월 의장이 완화정책을 고집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 주변은 혼란스러운 겁니다.
이날 오후 공개된 Fed의 베이지북에서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베이지북은 미국의 5월 말~7월 초 경제 활동이 '보통'(moderate)에서 '활발해졌다'(robust)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재 및 노동력 부족, 배달 지연, 소비재 상품의 낮은 재고 등 공급망 차질 문제는 더 광범위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물가가 평균 이상으로 올랐으며 물가 압력은 광범위하며 일부 지역은 물가 압력이 일시적일 것으로 판단했으나 대다수는 투입 비용과 판매 가격이 앞으로 몇 달간 추가로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파월 의장의 '일시적'이란 해석과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얘기입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세도 시장의 잠재적 우려 꺼리도 남아있습니다. 미국의 신규 감염자가 다시 2만~3만 명에 달하고 있으며(13일 3만649명, 13일 2만4862명), 호주는 시드니에서의 봉쇄를 연장했습니다. 아직 사망률, 입원율 등은 올라가고 있지 않지만 경제 활동 재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핑크로 돌아가겠습니다. 핑크 CEO는 증시에 대해선 장기적으로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주가가 직선으로 올라갈 것이라거나 실망이 있을 수 있다고 예고하는 게 아니다. 전반적으로 많은 재정 부양책과 통화 부양책,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시장에서 움직이는 많은 양의 화폐로 인해 추세는 여전히 상승할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하반기 상승세는 일부에서 바라는 것만큼 빠르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델타 변이 바이러스와 인플레이션을 들었습니다.

또 인플레이션이 있어도 생산성을 높일 수만 있다면 주식에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생산성 향상이 없으면 마진이 줄어들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괜찮다는 겁니다.

골드만삭스는 전날 보고서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기업의 디지털화를 가속화시켜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고 분석했습니다. 작년 3월 팬데믹이 본격화한 이후 미국의 시간당 생산량(연율 환산)이 '직전 비즈니스 주기' 대비 3.1% 증가했다는 겁니다. 직전 비즈니스 주기의 생산량 증가율은 1.4%였습니다.

화상회의 등으로 출장비용 등이 절감됐고 온라인 쇼핑, 재택근무 등도 생산성 향상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날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맥도널드, 나이키, 스타벅스, 타깃, 에스티로더, 펩시코, 비자카드 등은 사상 최고가(일부는 장중)를 갈아치웠습니다. 특히 애플은 블룸버그통신이 "애플이 납품 업체들에 차세대 아이폰 생산을 최대 9000만대로 20%가량 늘릴 것을 주문했다"라고 보도한 뒤 2.41% 급등, 시가총액이 2조4900억 달러로 2조5000억 달러 선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JP모간은 이날 애플에 대한 목표주가를 기존 170달러에서 175달러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가격결정력이 높은 '고품질주'입니다. 즉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비용상승을 공급망이나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기업들이죠.

반면 중소형주 지수인 러셀2000 지수는 이날 1.64% 떨어지는 등 최근 급락하고 있습니다. 한 달 동안 5.7% 내렸지요. 인플레이션에 가장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이 중소기업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시총 1위 애플이 이날 워낙 크게 오르면서 사실상 홀로 S&P 500 지수를 끌어올렸다"라면서 "그만큼 다른 주식들은 별 힘을 쓰지 못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시장의 폭은 최근 매우 좁아진 상태입니다. 지수가 오르는 날도 일부 고품질주에 매수세가 몰리면서 주가가 상승한 종목보다 하락한 종목이 훨씬 많은 경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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