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6·25전쟁을 '기념'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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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부정적(-) 개념의 일을 '기념'한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6·25전쟁 같은 참상을 '기념'한다고 하면 어색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6·25전쟁 기념행사가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서울시는 6·25전쟁 7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4일~.” 지난 6월 25일은 6·25전쟁 발발 71주년이었다. 관련 행사도 잇따라 열렸다. 그런데 이런 데 쓰인 ‘기념’이란 말은 좀 당혹스럽다.
우리 해군장병 46명이 희생된 천안함 피격사건도 '기념'하는 대상이 아니다. 좀 더 중립적 용어인 '추념' 정도를 쓰는 게 좋다.
‘기념’은 뜻깊은 일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
‘기념행사’ 또는 ‘기념식’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인데, 왜 낯설게 느껴질까? 단어 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기념(紀念)’이란 것은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함’을 말한다. 창립 기념, 개교 기념, 무역의 날 기념식 등 잊지 말아야 할 ‘기념’이 많다. 마찬가지로 ‘기념일’은 축하하거나 기릴 만한 일을 해마다 기억하는 날이다.핵심은 부정적(-) 개념의 일을 ‘기념’한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6·25전쟁 같은 참상을 ‘기념’한다고 하면 어색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1910년 일제에 당한 국권피탈을 ‘기념’한다고 하면 망발이 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우리 해군장병 46명이 희생된 천안함 피격사건도 ‘기념’하는 대상이 아니다. 좀 더 중립적 용어인 ‘추념’ 정도를 쓰는 게 좋다. 추념(追念)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다. 예문의 경우, 문맥에 따라 ‘맞다’ 동사를 활용해 “서울시는 6·25전쟁 71주년을 맞아 24일~” 식으로 쓰면 그만이다. 이도저도 마땅치 않을 땐 아예 ‘기념’을 빼고 “6·25전쟁 중앙행사가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처럼 써도 충분하다.가뜩이나 우리말은 개념어가 부족한데, 단어의 의미가 흐려지면서 용법을 구별하지 못하고 아무 데나 말을 가져다 쓰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신문언어에서 범하는 흔한 오류 중 하나인 ‘역임’도 그런 사례다. 역임(歷任)은 ‘여러 직위를 두루 거침’을 뜻하는 말이다. ‘력(歷)’이 ‘여러 곳을 두루 거쳐감/지나감’을 뜻하는 글자다. ‘A, B, C 등을 역임하다’ 식으로 적어도 둘 이상의 전직(前職)을 나열할 때 쓰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