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만에 휴지 조각된 '국회 정상화' 합의문

한국당 의원총회서
3黨 합의 추인 불발

한국당 "협상서 얻은 게 뭐냐"
패스트트랙 처리 조항 성토
원내지도부 '협상력" 지적도 대두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 합의가 24일 또다시 불발됐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이날 6월 임시국회 정상 가동을 위한 합의문을 발표했으나 한국당 내부 반대로 두 시간 만에 합의가 무위로 돌아갔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국회 정상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며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한국당 의총 못 넘은 합의문이인영 민주당, 나경원 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3시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한 뒤 6월 임시국회 정상화를 위한 6개 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국회가 공전한 지 80일 만이다. 합의문에는 △오는 28일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시작 △7월 1~3일 교섭단체 원내대표 연설 △7월 8~10일 대정부 질문 △7월 11, 17, 18일 추경안 및 민생 법안 본회의 처리 등이 들어갔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 이번 국회 파행의 단초가 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4법’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한국당 요구를 절충해 ‘각 당의 안을 종합해 논의한 뒤 합의 정신에 따라 처리한다’는 표현을 합의문에 집어 넣었다. 나 원내대표는 합의문 발표 직후 “이 원내대표의 결단으로 ‘합의 정치’를 복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3당 원내대표 서명이 담긴 합의문은 발표 두 시간 만에 휴지 조각이 됐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각각 오후 4시30분께 의총을 열고 합의문을 추인했으나, 앞서 오후 4시께 열린 한국당 의총에서 당론 추인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의총에서 발언한 17명 의원 모두 합의안에 반대 의견을 보였다”고 전했다.한국당 의원들이 가장 반발한 부분은 패스트트랙 4법 처리 관련 문구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민주당은 국회 정상화 합의문에 ‘패스트트랙 법안은 합의 처리를 원칙으로 한다’는 문구를 넣자고 주장해왔고, 한국당은 ‘합의 처리한다’는 표현을 요구해왔다. 한국당 한 재선 의원은 “합의 처리한다는 확실한 문구 없이 모호하고 불확실한 표현을 집어 넣어선 안 된다는 게 의총에 참석한 대다수 의원의 주장이었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의총이 끝난 뒤 “당 소속 의원 일동은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운영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을 원천 무효화하라는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극적으로 내놓은 합의문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폐기됐다”며 “공당으로서의 책임, 국민 대표로서의 도리를 내팽개친 한국당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또 원점으로 돌아간 국회 정상화

여야 합의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정부가 지난 4월 말 국회에 제출한 6조7000억원 규모 추경 편성안 처리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한국당은 원내대표 협상 전 방침대로 ‘북한 선박 대기 귀순’ ‘인천 붉은 수돗물’ 등 사건과 관련된 상임위원회 회의에만 선별 참여하기로 했다. 한국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추경 심사를 담당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구성부터 어려워진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5시30분께 본회의장에서 한국당 불참 속에 추경 관련 시정연설을 했다.

이 원내대표는 “당초 계획대로 모든 상임위를 정상 가동하겠다”면서도 “한국당 내 상황이 정리돼야 하겠지만, ‘경제 원탁 토론회’ 등 한국당의 요구안을 수용할 합의 정신은 아직 살아 있다”며 한국당과의 협상을 이어갈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한국당 안팎에선 국회 정상화 협상을 주도해온 나 원내대표 리더십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나 원내대표는 합의문 발표 직후 ‘문구가 모호하게 들어간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이 원내대표가 구두로 분명히 처음부터 논의해 합의 처리하겠다고 말했다”며 “합의 처리를 약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패스트트랙 법안을 반드시 합의 처리해야 하느냐’를 놓고 여야가 다툴 여지를 남겨 놓은 게 처음부터 문제였다”는 말이 나왔다. 한국당 일부 의원은 의총에서 나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 얘기까지 꺼낸 것으로 전해졌다. 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여러 의원들이 저한테 힘을 갖고 다시 한번 합의해 달라고 말했다”며 “더 큰 힘을 가지고 합의를 이끌어 갈 수 있게 권한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헌형/고은이/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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