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후폭풍 우려되는 'LG·SK 배터리 전쟁'

김재후 산업부 기자 hu@hankyung.com
한국 경제의 발전 토대가 마련되던 1962년. 연합철강과 한국철강은 서로를 헐뜯기 바빴다. 냉간압연강판 방식을 도입하려는 연합철강이 정부에 사업 승인을 신청한 게 발단이었다.

당시 한국 철강시장은 한국철강이 주도했다. 열간압연강판으로 철강을 생산하던 한국철강으로선 새로운 생산 방식을 가진 경쟁자가 등장하는 게 못마땅했다. 연합철강은 “냉간압연은 선진적인 기술로 열간압연으로는 못 만드는 자동차 강판 등도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철강은 “경제 규모가 작은 시장에서 시설 과잉을 초래하고 비싼 원자재를 써야 하기 때문에 외화를 낭비할 것”이라고 맞섰다.두 회사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사활이 걸린 듯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한국철강과 연합철강은 당시 군사정부를 비롯해 국회 언론 등에 상대방을 흠집 내는 투고와 제보를 잇따라 넣었다. 정부도 연합철강의 사업 승인을 내주지 못하고 시간만 끌었다.

사태는 국회의원들이 이들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스캔들로까지 번졌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1965년 6월 21일 정부가 냉간압연강판 사업을 허가하면서 두 회사의 싸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3년의 시간을 날린 뒤였다. 한국 철강 기술의 세계 시장 진출 기회가 그만큼 늦어지면서 국익만 훼손됐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57년이 지난 지금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를 놓고 비슷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인력(기술) 유출 문제로 야기된 두 회사 간 싸움은 미국에서 진행 중이다. 서로에 대한 감정적인 비난전도 시작됐다. LG화학이 소송을 내자 SK이노베이션도 맞소송하겠다고 대응했다.

전기차 배터리는 향후 자동차산업에서 엔진을 대체할 유망 분야다. ‘제2의 반도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다. 이 시장에서는 중국 회사가 세계 1위, 일본 회사가 2위다.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업체는 10위권에 머물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을 놓고 한국 회사 간 감정 싸움에 매달리다간 10위권 자리마저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과거 연합철강과 한국철강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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