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덮인 생선·과일 누가 사겠나"…영세상인들 미세먼지에 '질식'

최악 미세먼지에 갇힌 한반도

노점·좌판 손님 끊겨…"매출 80% 날아가 장사 접을판"
공사현장선 조업시간 대폭 단축…공정 차질로 발동동
실외 놀이공원도 '썰렁'…실내 테마파크·쇼핑몰 등은 북적
< 썰렁한 남대문 시장 > 서울지역 초미세먼지 농도가 2015년 공식 관측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난 가운데 전통시장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5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상인들이 마스크를 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6일)이 성큼 다가왔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차라리 꽃샘추위가 그리울 지경”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연일 전국을 덮친 살인적인 미세먼지로 여기저기서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병원에는 두통이나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려는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시민들이 외출을 기피하면서 야외공원과 전통시장 등은 된서리를 맞았다. 산업계도 아직은 가동률을 조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일부 공사현장을 중심으로 비산먼지 저감 비상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날 미세먼지 속에 아이들을 등교시킨 학부모들은 정부의 무대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 제주, 한라산이 사라졌다 > 5일 제주도 전역에 사상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이날 제주지역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는 각각 ‘나쁨’과 ‘매우나쁨’ 수준이었다. 제주 중심부에 있는 한라산이 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연합뉴스
나들이객 뚝 끊긴 전통시장·야외공원

유건규 전국상인연합회 사무총장은 5일 “전통시장은 백화점이나 마트와 달리 외부에 노출된 공간으로 미세먼지에 따른 타격이 극심하다”며 “현장에서 느끼는 고통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잡화·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최모씨(60)는 “1주일 전만 해도 하루에 50만원씩은 팔았는데 어제는 10만원도 못 건졌다”며 “월세나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하루 30만원은 돼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종로 광장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운영하는 최모씨(79)도 “예년보다 매출이 30%가량 줄었다”며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한데 밖에 진열된 생선을 누가 먹으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야외공원을 찾는 발걸음도 뚝 끊겼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서울대공원에 입장한 이용객 수는 533명에 불과했다. 1주일 전인 지난달 26일(2285명)의 23.3%에 그쳤다.

이비인후과나 안과 등 일선 병원은 밀려드는 환자에 일손이 달리는 모습이다. 서울 영등포역 인근의 한 이비인후과 관계자는 “호흡기 환자가 급증하면서 전화받을 시간도 없이 바빴다”며 “특히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나 어린이 환자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에 거주하고 있는 직장인 김모씨(26)는 “미세먼지가 많아지면 여지없이 비염과 함께 두통이 찾아온다”며 “이번에도 증상이 심해져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서울 강남의 한 안과 관계자도 “최근 미세먼지로 인해 안구건조증과 결막염 환자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미세먼지 속 자녀 등하교…애타는 학부모

극심한 미세먼지를 뚫고 어린 자녀를 등하교시켜야 하는 학부모들은 하루 종일 애간장이 탔다. 송파구에 거주하는 박모씨(38)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이 미세먼지를 뚫고 등하교를 할 수밖에 없어 가슴이 미어진다”며 “맞벌이 부부다 보니 애한테 마스크를 씌우는 것 말고 다른 뾰족한 대안도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에 따라 공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는 건설현장도 하늘이 원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날 비상저감조치로 공사 시간이 단축 조정된 건설현장은 전국 2만7418곳에 달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며칠째 비상저감조치로 인해 관내 1800여 공사장에서 공사 일정이 대폭 단축됐다”며 “이에 따른 손실은 지방자치단체가 떠안을 수밖에 없어 재정에도 타격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노후 설비를 교체하는 등 대기오염 배출을 줄이는 데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이 초미세먼지(PM 2.5) 등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2060년 국내총생산(GDP)의 0.63%에 해당하는 경제적 피해를 입는다. 이 비율은 오염원을 다량 배출하는 중국(2.5%) 인도(1.0%)보다는 낮지만 미국(0.21%) 독일·프랑스·이탈리아·영국(0.11%) 등 주요 선진국보다는 높다. OECD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질병이 증가해 의료비 지출은 늘고 노동생산성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쇼핑몰·실내 테마파크 등은 ‘때아닌 호황’

잠실 롯데월드나 신세계 스타필드 등 실내 테마파크, 복합 쇼핑몰 등은 최근 이용객이 크게 늘면서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소셜커머스 티몬에 따르면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4일까지 실내 동물원과 키즈파크 등 실내 테마파크 예약이 전월 대비 22% 증가한 반면 실외 프로그램 예약은 50% 가까이 줄었다. 하나투어와 노랑풍선, 인터파크투어 등 여행사에선 미세먼지를 피해 호주와 뉴질랜드 청정지역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획상품을 앞다퉈 내놨다.

박진우/정의진/이태훈 기자 jwp@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