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 치킨에 묻어있는 정치학

교촌치킨, 치킨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탄산음료 ‘교촌 허니 스파클링’ 출시
라면과 치킨에도 정치가 묻어 있다면 믿을까요. 라면과 치킨 같은 사소한 식품에 과연 그런 게 있을까, 싶지만 우리가 반세기 넘게 즐겨온 인기 먹거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치의 냄새가 비껴갈 리 없습니다. 물론, 라면과 치킨을 놓고 여야가 갈리고 정쟁으로 싸우는 건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정부의 정책과 정치의 결과물이 베어있다는 얘기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정부가 이 식품들도 규제하는 대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워낙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식품이다보니 정부는 이 식품들을 대상으로 국민 건강 관리에 나서기도 합니다.

라면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싱거워졌습니다. 정부가 그렇게 라면회사들을 압박한 결과입니다. 2010년을 전후로 ‘한국인들이 너무 짜게 먹는다’는 언론 보도들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인이 음식을 너무 짜게 먹기 때문에 위암 등의 발병 빈도가 높다는 지적도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싱겁게 먹자’는 캠페인이 일었습니다. 정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정부는 라면업계를 소집했습니다.국내 라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식품의약안전처가 당시 국내 라면회사의 대관(對官)이나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자를 모아 놓고, 나트륨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명령이 아니라 아이디어들을 내보라고 했고, 이에 따라 “라면 스프 봉지를 절반으로 쪼개 담아 절반만 먹도록 유도하자”는 의견들도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라면회사들의 제조 비용 상승 등이 야기됐고, 가뜩이나 저렴한 라면의 가격이 오른다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자 그냥 나트륨을 줄이라는 명령으로 정리가 됐다고 합니다. 다른 라면 회사 관계자는 “나트륨이 줄면 당연히 소비자들이 맛이 없다고 느낀다”며 “어쩔 수 없었지만, 식품업체들은 정부가 무서우니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어 “대신 다른 첨가물을 개발하며 지금의 맛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한국 라면의 나트륨 함량은 계속 낮아졌습니다. 국내 1위 라면인 신라면 한봉지의 경우 2006년까지 나트륨 함량은 2100㎎이었으나, 2007년 1930㎎으로 줄어 듭니다. 그러다 ‘나트륨 줄이기 운동’이 불던 2014년이 되자 또 다시 1790㎎으로 낮추게 됩니다. 지금의 신라면 나트륨 함량입니다. 일본과 중국의 라면보다 훨씬 적은 수치입니다. 오히려 곁들어 먹는 김치가 훨씬 짭니다.이런 모습은 치킨에도 나타났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치킨을 주문하면 딸려오는 콜라가 다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역시 치킨 1위인 교촌치킨의 경우 콜라 대신 ‘교촌 허니 스파클링’ 등이 왔습니다. 물론 주문시 “콜라를 달라”고 하면 콜라를 줍니다. 그러나 대개 말이 없으면 ‘교촌 허니 스파클링’이 ‘디폴트’로 주어집니다.

‘교촌 허니 스파클링’도 정부 정책의 산물이라는 게 치킨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7년 나트륨과 전쟁을 마친 보건식품 당국은 이제 당과의 전쟁을 벌입니다. 나트륨 만큼 당도 많이 섭취하는 한국인들의 건강을 ‘염려한’ 정부의 판단입니다. 이에 따라 또 정부는 치킨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한 치킨회사 관계자는 “당시 치킨에 들어가는 당을 줄이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치킨의 경우 양념밖에 당을 덜어낼 만한 게 없었다”며 “그렇다고 양념에서 당을 줄이면 당장 맛이 없다는 소비자의 항의를 들어야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 결과 치킨회사들은 콜라를 덜어낸 것입니다. 콜라보다 당이 적은 탄산음료로 콜라를 대체하거나 아예 당을 줄인 다른 탄산음료를 개발했습니다. 그렇게 ‘교촌 허니 스파클링’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이 2017년 4월 교촌치킨의 공지사항에 나옵니다.<다이어트에 효과적인 ‘L-카르니틴’ 성분 함유…낮은 당 함량으로 날씬하고 건강하게...교촌치킨이 치킨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탄산음료 ‘교촌 허니 스파클링’을 출시>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홍보는 하지만 사실은 설탕이 들어간 탄산수입니다. 콜라와 별 다른 차이는 없지만, 설탕(당)을 콜라보다 훨씬 줄인 상품입니다. 광동제약과 함께 개발했습니다. 콜라 대신 이 제품을 치킨과 함께 배달한 교촌치킨엔 한동안 항의도 꽤 들어왔다고 합니다. “맛있는 콜라를 달라”고 말입니다.
라면과 치킨에 정치가 묻어 있다고 한 건, 이렇게 보이지 않게 정부 정책이 반영돼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는 말이었습니다. 또 이를 두고 논쟁도 벌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이런 내용을 잘 모르지만,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됐을 때 정치적인 의견이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갈릴 수 있습니다.예컨대 “왜 정부가 가정의 식탁문제까지 참견을 하냐. 전체주의 국가냐. 나는 맛있는 게 먹고 싶은데, 정부가 나서 왜 막느냐. 기업의 자율 경영권을 정부가 왜 침해하냐”는 자유적인 입장과 “국민 건강 관리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너무 달고 짠 음식을 정부가 규제하지 않으면 기업들은 무리하게 높일 것이니 당연한 개입이다”는 규제주의적인 논쟁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입장이신지요.

김재후 생활경제부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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