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전환 장려하더니 이제와서 바꾸자고?" 공정위 보고서에 뿔난 재계

공정거래위원회의 의뢰를 받은 연구진이 지주회사 전환 유도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경제계에서는 “이제까지 지주사 전환을 독려하던 정부가 갑자기 지주회사 체제의 문제점을 강조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왔다.

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외국의 지주회사 현황·제도 등의 운영실태 및 변화양상에 대한 분석’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주회사 설립 및 전환 유도 방식의 정책 기조를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주요 국가의 지주회사는 대부분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충분한 배당수익을 확보할 수 있어 대주주의 사익편취와 소수주주권 침해 같은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한국의 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평균 39.4%(상장사 기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배당수익을 충분히 올릴 수 없고, 그만큼 총수일가가 내부거래로 사익을 취할 우려가 높다고 신 교수는 발표했다.그는 “한국은 지주회사가 총수일가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자회사는 지주회사의 적은 지분으로 지배되고 있는 구도”라며 “대주주의 지분이 적은 자회사로부터 지분이 높은 모회사로 이익을 옮기는 ‘터널링’ 혹은 사익편취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업집단 지배력 강화 규제를 조정해 자회사 지분율을 높이도록 유도하면 터널링 유인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제단체 고위관계자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적극 장려해놓고 이제와서 딴 얘기를 하는 꼴”이라며 “기업이 지배구조를 바꾸려면 수십 년 앞을 보고 틀을 짜는데, 정부가 방침을 오락가락하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대기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대주주 뿐만 아니라 일반주주의 지분가치가 커진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지주회사 48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대주주의 지분가치가 증가한 기업은 28개, 일반주주의 지분가치가 증가한 기업은 25개였다는 설명이다.

지주회사제도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소유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허용됐다. 이후 지주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 지분을 상장회사는 30%에서 20%로, 비상장회사는 50%에서 40%로 축소하고 지주회사의 부채비율도 종전 100% 이하에서 200% 이하로 완화했다. 정부는 세제혜택까지 주며 지주회사 전환을 유인했다. LG SK 금호아시아나 CJ 등 주요 대기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속속 전환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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