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 "시장 잠식 불가피"… 밴社는 존립 기반 흔들릴 수도

서울시 '결제수수료 0%' 실험

긴장하는 카드·결제대행업체
국내 카드업계가 ‘제로페이’ 등장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수수료 제로(0)’를 표방하는 제로페이가 627조원에 달하는 신용카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25일 서울시가 결제 플랫폼 사업자, 은행 등과 제로페이 도입 및 활성화 계획을 발표한 직후 카드업계의 반응은 ‘아연실색’이 대부분이었다. 제로페이 활성화 계획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울시는 카카오페이, 페이코, 네이버, 티머니페이, 비씨카드 등 5개 민간 결제플랫폼 사업자와 신한·우리·국민은행 등 11개 은행을 제로페이 실행 동력으로 확보했다. 여기에 소득공제 적용, 공공시설 할인 등 유인책까지 제시했다. 이대로라면 신용카드 충성 고객들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카드업계의 우려다.카드업계를 대변하는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기존 결제플랫폼 사업자와 은행이 상당수 참여하는 데다 정부 예산까지 투입되면 시장 확산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예상보다 카드업계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카드사 사이에선 공공부문이 민간 사업자 영역을 침범한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제로페이가 얼마나 활성화될지는 소비자 선택에 달려 있지만 기본적으로 불공정 경쟁”이라며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제대행 수수료로 먹고사는 밴(VAN·결제대행)사들은 존립 기반마저 흔들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제로페이 활성화로 카드결제 시장이 축소될 경우 밴사는 결제대행 수입이 줄어 타격을 받는다. 소비자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바로 입금하는 ‘계좌 대 계좌’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카드사 역시 밴사를 거치지 않는 직접 결제 체계로 전환할 수 있다.제로페이로 줄어든 지급결제 수수료 부담이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가맹점이 부담해오던 수수료를 누군가는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보전해주거나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식의 비용 부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제로페이를 통한 소득공제 혜택이 도리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고소득자나 대형 상공인이 더욱 많은 혜택을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