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싱가포르 등 제3국 선박 무더기 제재… 북한 '해상 밀거래' 원천 봉쇄

미국 '초고강도 대북제재'
트럼프, 딸 한국 보낸 날 "사상 최대 대북제재"

북한에 비핵화 대화 압박
기업·선박·개인 등 56개
대북제재 '블랙리스트' 발표
제재 '구멍'된 해상거래 차단

불법지원 의심되는 중국·러시아
'세컨더리 보이콧' 강수 카드

정부, 북미대화 물꼬에 '비상'
일각 "북미 깜짝 접촉할 수도"
미국이 북한 대표단이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가하는 시점에 맞춰 역대 최대 규모의 대북제재안을 발표했다. 북·미 대화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비핵화 협상이 아니면 북·미 대화에 나설 이유와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올림픽을 전후해 북·미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에 비상등이 커졌다.

◆美, 북 압박 의지 강조미국이 23일 발표한 대북제재는 27개 무역회사와 해운회사, 28개 선박, 개인 1명 등 제재 대상이 56개(명)에 달한다. 통상 10~20개 정도였던 기존 제재 대상의 두 배 이상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금지한 북한과의 불법 거래에 참여하거나 이를 방조한 대상이 대거 포함됐다.

미국은 특히 북한을 불법 지원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도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이라는 강수를 꺼내 들었다. 불법 거래를 방조하거나 측면 지원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국제 금융망에서 퇴출하고 미국 내 자산동결·미국 거래 중단 등의 제재를 내리겠다는 의지다.

미국이 북한과 불법 거래한 선박 정보 공유를 확대하고, 한국 일본 동맹들과 함께 이런 선박의‘해상 차단’에도 적극 나서기로 한 점도 눈에 띈다. 제재 대상이라는 점을 숨기기 위해 선박 표면에 페인트칠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위장하는 선박들도 가중 처벌하기로 했다.◆김영철은 대남용인가

미국의 강경 대응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북한은 평창올림픽 개회식 때부터 미국과의 대화를 의식한 행보를 보여 왔다. 북한은 지난 1일 백악관이 펜스 부통령을 고위급 대표단 단장으로 한국에 보낸다고 발표하자 사흘 뒤 권력 서열 2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이번에도 백악관이 21일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의 참석을 발표하자 곧바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대표로 보낸다고 알려 왔다. 북·미 접촉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번에 김영철을 대표단장으로 보내는 이유는 북·미 접촉보다 남북정상회담 같은 남북 대화를 위한 카드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청와대도 10일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만남을 주선하던 것과 달리 이번엔 “북·미 접촉 계획이 없을 것”이라고 발을 빼고 있다.◆美, 대화보다 제재

미국은 이번 제재를 위해 그동안 정보를 꾸준히 축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8일 한국 방문 전 일본에 들러 “북한이 미소외교로 세계 시선을 강탈하려는 것을 막으러 간다”며 “최강 대북제재안을 곧 발표한 것”이라고 예고했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의 독자제재 대상인 김영철의 한국 방문을 허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가 (한국을 방문한다면) 천안함기념관에 가서 그에게 책임이 있다고 여겨져온 것을 보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안보공원에 있는 천안함기념관에는 파괴된 천안함 선체가 전시돼 있다. 펜스 부통령은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방한했을 때 천안함기념관을 둘러봤다.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북·미 간 깜짝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경제에 타격을 주는 대북제재를 무력화하기 위해 미국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미국은 강력한 대북 압박 속에서도 비핵화 대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어트 대변인도 “우리는 한국과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다”며 “올림픽 개회식을 위해 한국에 김정은의 여동생이 왔을 때처럼 (김영철의 방문 허용 여부를) 한국과 긴밀하게 조율 중”이라며 한·미 간 정책 공조가 잘 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정인설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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