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중국 인문기행' (6) 쓰촨(四川)] 하천과 협곡에 둘러싸인 천부지국(天府之國)

유광종 < 뉴스웍스 콘텐츠연구소장 >
1986년 쓰촨에서 고고학 발굴로 세상에 나와 세계를 경악케 한 삼성퇴 유적의 청동기 마스크. 쓰촨에 자리를 틀었던 고촉(古蜀)의 유물이다.
이곳은 하천과 협곡이 발달한 지역이다. 그 지형 특성을 지칭할 때 쓰던 단어가 川峽(천협)이었고, 수많은 하천과 협곡을 중심으로 네 군데 대형 행정구역인 路(로)를 설치해 전체를 일컬었던 말이 川峽四路(천협사로)였다고 한다. 송(宋)과 원(元) 때까지의 쓰임이다.

나중에 이를 간추려 부른 단어가 四川(사천)이고, 중국어` 발음으로 적자면 ‘쓰촨’이다. 그러나 원래 이곳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글자가 있다. 바로 蜀(촉)이다. 이 글자의 연원은 누에 또는 양잠(養蠶)과 관련이 있다.이곳에 처음 문명의 터전을 닦은 주체는 누구일까. 우선 고촉(古蜀)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 고촉이라는 나라의 첫 군주는 잠총(蠶叢)이라고 한다. 누에 또는 양잠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그 뒤를 이은 사람이 지난 ‘충칭(重慶)’편에서 이미 소개한 두우(杜宇), 그가 남긴 설화가 소쩍새와 진달래 스토리다.

그런 점을 따져보면 쓰촨은 원래 중국 문명과는 매우 이질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86년 쓰촨의 행정 중심인 청두(成都) 인근의 광한(廣漢)이라는 곳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고고학 발굴이 있었다. 그 이름은 三星堆(삼성퇴)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청동기 마스크가 대량으로 나왔다.

이 삼성퇴 유적의 연원은 아직 미스터리다. 그러나 이들이 잠총과 두우가 활동한 고촉의 한 갈래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외계인을 닮은 모습의 청동 마스크, 고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정하는 금박(金箔)의 흔적, 아프리카 코끼리의 것으로 보이는 대형 상아 등이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유비·제갈량이 세운 촉한의 터전

그러나 다 옛날 옛적 이야기다. 그로부터 2000~3000년이 지난 뒤에 이곳을 제 판도로 넣은 진시황(秦始皇),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책략에 따라 이곳에 촉한(蜀漢)의 깃발을 세웠던 유비(劉備)와 제갈량(諸葛亮) 이후로 쓰촨은 완연한 ‘중국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1997년 동쪽의 충칭이 새 직할시로 지정돼 이곳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 쓰촨은 명실상부한 중국 최대 성(省)이었다. 그러나 지금 쓰촨의 인구도 9100만명을 넘어섰다. 서쪽으로는 티베트 고원, 남쪽으로는 윈난(雲南)과 구이저우(貴州)의 고산, 북쪽으로는 친링(秦嶺)산맥, 동쪽으로는 바산(巴山)의 깊은 협곡에 막혀 있다.

그래서 쓰촨은 거대한 분지(盆地) 형태다. 한 번 들어가 정착한 다음에는 다시 나오기 힘들다. 이 점은 유비가 제갈량 등과 함께 이곳에 촉한을 세우러 들어갈 때의 고민이기도 했다. 깊은 분지에 들어가 정착하기는 쉬워도 다시 험난한 산지(山地)를 헤쳐 나와 세력을 펼치기가 어려웠다는 얘기다.

물자가 풍부한 '이민의 땅'이곳의 물산은 매우 풍부하다. 장강(長江)을 비롯해 무수한 하천이 흐르고 땅이 비옥해 농사에는 적지(適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은 늘 ‘천부지국(天府之國)’으로 불렀다. 우리식으로 옮기면 ‘하늘의 나라’ ‘천당’ 정도다. 영어식으로 풀면 ‘파라다이스’다. 식량이 풍부해서 나온 말이다.

먹고 살기 좋으니 이곳은 북부와 동부로부터 전란을 피해 찾아드는 사람이 많았다. 따라서 쓰촨은 이민(移民)의 땅이기도 하다. 동부는 인근 후난(湖南)과 후베이(湖北), 중부는 장시(江西)와 광둥(廣東) 등에서 온 이민의 영향이 크다. 언어 분포도 대개 그렇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기질은 매우 낙천적이다. 쓰촨 사람들을 비꼬는 말 하나가 있다. ‘촉나라 개는 해를 보고 짖는다’는 말이다. 한자로는 촉견폐일(蜀犬吠日)이라고 적는다. 거대한 분지 형태의 지형이라 늘 운무(雲霧)가 끼어 이곳에서는 좀체 쨍쨍한 해를 볼 수 없다. 그래서 느닷없이 맑게 갠 날에는 개들이 해를 보고 짖는다는 뜻이다.어느 한 곳에 갇혀 지내며 바깥 사정에 둔감해 어리석은 짓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이곳 출신이다. 이민사회의 활력에 황제의 권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 지니는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곳이다. 마침 쓰촨은 ‘서부대개발’ 전진기지로 떠올랐다. 해를 보고 짖는 개를 떠올리며 이곳 사람들을 대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얘기다.

유광종 < 뉴스웍스 콘텐츠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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