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오태석·하유상·천승세…한국 연극계 전설이 돌아온다

내달 3~26일 '원로연극제'
“70년 전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저같이 살아남은 사람들 아닙니까. 시대를 증언하는 작품을 선보이겠습니다.”(극작·연출가 김정옥)

김정옥(85) 오태석(77) 하유상(89) 천승세(78)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연극계 거장의 작품이 잇달아 무대에 오른다. 다음달 3~26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올해 처음 여는 ‘원로연극제’에서다. 김정옥 작·연출 ‘그 여자 억척 어멈’(3~17일), 오태석 작·연출 ‘태(胎)’(3~12일), 하유상 작·구태환 연출 ‘딸들의 연인’(4~12일), 천승세 작·박찬빈 연출 ‘신궁’(17~26일) 등 네 편이 상연된다. 서양 고전과 번역극, 창작 신작 등이 점령한 국내 연극 무대에 보기 드물게 펼쳐지는 ‘원로 극작가 열전’이다.한국 연극계의 ‘대부’로 불리는 김정옥 전 극단 자유 대표는 총체 연극, 연기자 중심 무대 등 다양한 형태의 실험을 통해 새로운 한국적 연극의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그 여자 억척 어멈’은 1인 4역의 모노드라마다. 한 배우가 현재의 ‘나’부터 1951년 6·25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 여배우 배수련,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억척어멈’ 중 억척어멈,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한 ‘조선판 억척어멈’으로 변신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1997년 박정자가 초연했다. 이번에는 배해선이 1인극 무대에 선다.

김 전 대표는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을 한국사의 동학혁명과 6·25전쟁 등과 엮어 각색했다”며 “한 시대를 증언하는 작품으로 내놓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는 직관과 즉흥성, 특유의 장단을 살린 ‘한국적 연극미학’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대표작 ‘태’는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란을 배경으로 죽음을 뛰어넘는 삶의 가치를 묻는다. 1974년 초연 이후 한국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오 대표는 “이 연극을 초연한 40년 전과 지금의 관객은 다르다”며 “거의 신작을 올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원로 배우 오현경(80)이 박팽년의 아버지 박중림 역을 맡는다.하유상 작가는 1950년대 남녀 간 애정전선을 통해 신·구 세대의 갈등을 조명하고, 이를 따뜻하고 해학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인기를 모았다. 1957년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딸들의 연인’은 그의 데뷔작이다. 자유연애와 결혼을 코믹하게 다룬다. 이번 공연에는 박윤희 배상돈 황세원 등이 출연한다.

천승세 작가는 인간 사회의 비정함을 압축적이고 민중적인 언어로 표현해 왔다. ‘신궁’은 1977년 발표한 자신의 중편소설을 각색한 초연작이다. 악덕 선주와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는 어촌인의 실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의 대표작인 ‘만선’을 떠올리게 한다. 무속과 토속적 방언이 넘치는 소설을 각색했다. 이승옥 정현 이봉규 등이 출연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