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잡자니 주택 경기 식을라"…고민빠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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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가계부채 방안 가이드라인 발표 앞두고내년 1월부터 주택담보대출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가계부채 관리방안’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12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 빚을 줄이기 위해선 주택담보대출을 조여야 하는데, 그러다가 자칫 부동산 경기가 급속히 냉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 내에서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번주 초 가계부채 관리방안 세부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기획재정부가 “주택 경기가 급속히 침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해 발표 시기를 미룬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 침체 우려"…청와대 주문에 이달 말로 연기
'변동금리·원금상환 유도' 큰 틀은 원안대로 시행
◆가계부채냐, 부동산 경기냐25일 정부부처와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당초 지난 24일 가계부채 관리방안 후속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 가이드라인은 지난 7월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세부 시행지침으로, 전국은행연합회 내 태스크포스(TF)에서 마련했다.가이드라인의 핵심은 ‘내년부터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거치식이나 원금 일시상환 대신 분할상환을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1166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40%(약 470조원)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증가 속도를 늦추자는 게 이 대책의 골자다.
문제는 이 같은 대출 규제가 부동산 경기를 급랭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내수 부진 등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데 부동산 경기까지 꺾이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토교통부 등 일부 부처에서도 이런 우려를 표했다. 급기야 기재부도 나섰다. 기재부는 지난주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부동산 시장을 얼마나 위축시킬 것인지 등을 좀 더 분석해 보도록 금융위에 지시했다.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는 “기재부가 금융위에 가계부채 대책의 수위 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금융위는 이에 따라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좀 더 파악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세부 가이드라인 발표 시기도 24일에서 이달 말로 늦췄다.◆세부 가이드라인 내용은…
기재부의 주문에 세부 가이드라인 발표를 늦췄지만 금융위는 7월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원안대로 시행할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그렇다고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시장 우려를 감안해 집단대출에는 대출 규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위는 이달 말 은행연합회를 통해 가계부채 관리방안 세부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뒤, 한 달간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심사 준비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세부 가이드라인에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이 담긴다. 우선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각각 60%를 넘으면 대출금 전액을 분할상환하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변동금리로 대출받을 때는 스트레스금리를 적용한 DTI 80%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스트레스금리는 향후 금리 인상에 대비해 대출 한도를 계산할 때 추가로 매기는 가산금리를 말한다. 대출 시점의 금리에 추가로 2% 남짓의 스트레스금리를 더해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80%가 넘지 않는 한도에서 대출해주는 식이다. 또 내년 주택담보대출 심사 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80%를 넘는지 평가하기로 했다. 은행권 대출 외에 신용대출, 카드론 등 모든 금융권 대출의 총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80%를 넘으면 대출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태명/이현일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