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핵심감사제(KAM) 도입해야 하나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이 핵심적인 재무·위험 정보를 투자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핵심감사제(KAM)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내년 조선 건설 등 수주산업에 대한 KAM 도입을 공식화했고 2018년께 전체 상장사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KAM은 외부 감사인이 기업 회계감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위험하다고 판단한 정보를 감사보고서에 서술하는 제도다. 지금은 적정·한정·부적정·의견거절 등 ‘단문형’ 감사 의견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 중 99%가 ‘적정’ 의견이어서 감사보고서의 정보 가치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KAM이 도입되면 1933년 미국 증권법이 제정된 이후 80년 넘게 써오던 단문형 감사의견 체계가 ‘장문형’으로 바뀌게 된다. ‘신(新)국제감사기준’이라고 불릴 만큼 큰 변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프랑스 등 일부 국가만이 KAM을 도입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도입 논의가 초기 단계에 있을 정도로 선진 제도다.

금융위는 KAM이 도입되면 잇단 대형 분식회계 사건에 따른 시장 불신을 없애고 회계 투명성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많은 KAM을 선제적으로 시행하기엔 한국의 회계감사 환경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는 반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찬성 / 감사보고서에 핵심 위험정보 공개…회계 투명성 높이는 계기될 것내부감사·감사위원회 역할 강화도 이끌어

최근 효성 동양 대우건설 등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회계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회계분식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어떻게 외부감사를 하길래 이런 사건들이 계속 일어날 수 있느냐’며 회계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분식의 주체와 책임은 회사에 있는데도 감사를 맡은 회계사에게 화살이 함께 날아오는 것이다. 외부 감사인이 열심히 감사업무를 수행해도 몇몇 기업이 의도적으로 분식하는 것을 적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회계정보를 이용하는 일반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회계사 역할이 정보 이용자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3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그룹 사례를 살펴보자.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외부 투자자들뿐 아니라 다수의 특수관계자(계열사)들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수천억원의 자금을 공급했다. 당시 감사보고서에는 ‘이 재무제표는 회계기준에 따라 중요성의 관점에서 적정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는 말뿐이었다.모든 감사보고서에 똑같이 등장하는 이 문장만 보면 동양그룹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외부인들이 알기 어렵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핵심감사제(KAM)다. KAM을 통해 동양 감사보고서에 ‘막대한 단기자금 조달과 특수관계자 거래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감사인이 서술하게 되면 전문성이 없는 일반 정보 이용자들에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KAM은 감사인과 정보이용자 간 감사보고서에 대한 기대치 간극을 크게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심각한 정보비대칭에 놓여 있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제도다.

KAM은 내부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 위원들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는 계기도 마련해 줄 전망이다. 외부 감사인이 KAM을 확정하기 위해선 내부 감사기구와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내부 감사위원의 회계 전문성과 독립성이 필요한 이유다. 금융위는 KAM 도입과 함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은 감사나 사외이사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조치를 함께 마련했다.

무엇보다 KAM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 내부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 위원들의 역할과 책임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때문에 감사인 지정제도를 확대 실시하는 방안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외부 감사인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정하고 있지만 관리종목이나 상장을 앞둔 기업, 부실한 기업에 대해선 금융감독원이 외부 감사인을 강제 지정하는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나아가 감사인 지정제도의 대상 범위를 분식회계 징후가 발견된 기업들에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지정된 외부 감사인은 회사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엄밀한 감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KAM뿐 아니라 다른 제도들도 함께 보완 실시해 KAM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길 기대한다.

반대 / 기업·감사인에 과도한 부담 지워…미국도 도입 반대 목소리 높아

회사와 소통 못하면 감사보고서 지연 우려

한국의 취약한 회계 환경에서 핵심감사제(KAM)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KAM은 지배기구와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한다. 내부 감사위원회가 주도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에서 시행 가능한 제도다. 한국은 감사위원회 이사회 감사 중 지배기구가 누구인지, 지배기구에 대한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다. 감사위원회가 외부 감사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상장사는 10% 미만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KAM은 영국과 같이 감사인의 법적 책임이 크지 않은 국가에서나 가능한 제도다. 영국에서는 감사인이 감사보고서에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책임이 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등에서는 감사인이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도 이 문제 때문에 KAM 도입에 반대 목소리가 높다.

KAM 도입을 통한 사회적 효익보다는 비용이 훨씬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 KAM은 감사보고서에 대한 정보 이용자들의 기대 격차를 완화하자는 취지이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정보 이용자들에게 얼마나 유용하게 작용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일반 투자자들이 감사보고서를 샅샅이 살펴보기엔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다. 애널리스트들 역시 회계정보를 면밀히 분석해 투자자들에게 독립적 투자 의견을 내는 사례가 많지 않다. 매수 일변도의 투자의견이 이를 반영한다. KAM이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대신하도록 해선 안 된다.

결국 기업과 감사인에게 과도한 비용과 책임을 부담시킬 뿐 투자자를 위한 효익은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적용 과정에서 감사인들이 회사와의 소통 부재, 자료 불충분 등의 사유로 KAM을 작성하지 못해 무더기로 감사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기업인 애플의 한 임원은 KAM에 대해 “불필요하게 재무보고를 지연시키고, 감사보고의 주된 목적을 약화하며 재무제표 이용자들에게 의미 있는 혜택을 주는 것도 없이 회사 비용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일반 투자자들은 KAM이 감사에 관한 모든 것을 기술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감사의 본질은 감사된 재무제표가 사용할 만한 것이라고 인증하는 데 있다. 기업이 감추고 싶은 정보를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잘못하면 감사보고서에 대한 기대 격차를 좁히려는 KAM이 오히려 기대 차이를 키울 우려마저 있다.영국 등 KAM과 비슷한 회계감사 기준을 시행하는 국가에서는 오랫동안 준비기간을 거쳤다. 현재 한국은 감사인증기준위원회(KAASB)에서 KAM 도입시기를 논의하는 걸음마 단계다. 감독당국에서는 수주산업의 회계절벽 예방을 위해 국제감사기준의 KAM을 변형해 수주산업에 조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KAM이 그 자체만으로는 선진화된 감사제도로 평가된다고 하더라도 각국의 감사 환경이나 제도적·법적 상황을 고려해 신중하게 도입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도입 전에 충분한 사전 준비와 이해득실을 따져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도입을 서두를 일이 아니다. KAM은 도입 즉시 회계투명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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